출처: https://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9051이집트 카이로 무대에 오른 현대국악앙상블 ‘굿모리’(이하 굿모리)의 연주가 시작되자 카이로가 한국 전통음악의 미학으로 스며들었다. 인류 문명의 상징이자 세계 최고(最古)의 거대 석조 유적인 피라미드가 자리한 이집트 카이로의 공기를 전통 대금 연주가 갈랐고, 장구 장단은 낱선 도시의 리듬과 맞물려 새로운 호흡으로 다가왔다.
한국 전통음악을 현대적 감각으로 확장해 온 굿모리가 지난 5일과 6일 진행한 이집트 카이로 문화예술 활동에서 현지 관객과 학생, 교수진으로부터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이번 행사는 한국·이집트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카이로 아메리칸대학교(The American University in Cairo·AUC)가 굿모리를 초청하며 성사됐다. AUC는 1919년 설립된 이집트의 대표적인 영어권 사립대학으로 중동 지역의 주요 미국식 고등교육기관, ‘아랍권의 지적·사회적·문화적 삶의 중심지’로 소개되는 대학이다.
◇ 현대국악앙상블 ‘굿모리’, 카이로 아메리칸대학교 초청 공연 성료
굿모리의 초청을 이끈 일등공신은 AUC에서 음악과정 책임교수(Music Program Director)로 재직 중인 데이빗 래퍼티 교수다. 캐나다 출신인 래퍼티는 한국에서 권은실 굿모리 예술 감독에게 작곡을 배웠다.
한국 생활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캐나다로 건너가 박사 과정까지 밟았다. 이후 이집트 AUC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굿모리의 이번 AUC에 초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공연의 사회까지 맡았다.
권 감독에게 이번 공연은 제자와 스승의 재회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가 “제가 뿌린 래퍼티라는 작은 씨앗이 결국 이렇게 큰 결실을 맺은 것 같아 감동이었다”고 전했다.
지난 5일, 이번 교류의 서막을 ‘한국-이집트 교류음악회(Korea-Egypt Exchange Concert)’가 열었다. 공연은 AUC 말락 가브르 아트 시어터(Malak Gabr Arts Theatre)에서 펼쳐졌다. 권 감독은 “단순한 초청 연주를 넘어 한국 전통음악을 중동권의 젊은 예술가와 학계에 직접 소개한 의미 있는 무대였다”며 AUC 공연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카이로 행사에는 공연 외에도 AUC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악 : The Soul of Korea’라는 주제의 월드뮤직 클래스 특강도 진행했다. 권 감독은 한국 음악의 정신성과 국악기의 미학을 학생들에게 설명했고, 연주자들은 가야금·대금·해금·장구 등을 직접 시연하며 악기의 구조와 음색, 연주 방식을 소개하며 한국 전통 음악의 미학을 전했다.
또한 6일에는 주이집트 대한민국대사관저에서 열린 K-Food Night 행사 축하공연을 이어갔다. 이 행사는 주이집트 한국대사관과 한·아프리카재단, 한국식품산업협회가 함께 마련한 자리로, 한국 음식과 문화를 함께 소개하는 행사였다.
굿모리 앙상블은 축하공연에서 전통음악 연주를 선보이며 현지 외교 관계자와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한국 문화의 정서를 전달했다. 권 감독은 “이번 카이로 일정은 한국 전통음악이 해외에서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전했다.
◇ 굿모리의 정체성은 ‘새로운 음악’ 추구
이번 행사는 굿모리가 오랜 시간 구축해 온 음악적 방향성에 부합했다. 2007년, 대창작음악을 연주하는 국내 유일 현대음악 국악앙상블 단체로 창단한 굿모리는 전통음악의 원형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음악, 국제 협업, 새로운 창작언어를 결합해 온 단체다.
굿모리의 창단 모토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현대창작음악 추구”로 모아진다. 창단 단원은 엄윤숙, 정유정(가야금), 류상철(대금), 이아름(해금), 최영필(피아노), 권은실(작곡, 예술감독) 등이다.
굿모리가 추구하는 새로운 음악의 기반은 한국 전통 음악이다. 이들은 가야금, 해금, 대금, 장구 등의 한국 전통 악기와 피아노와 바이올린 같은 서양 악기가 어우러지는 창작곡을 국내외 작곡가에게 위촉하고 연주한다. 굿모리가 지금까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등지의 작곡가들에 위촉해 발표한 창작곡만 해도 100여 작품이 넘는다. 해외 작곡가의 경우도 우리의 국악기를 이해한 바탕 위에서 작곡했다.
“새로운 음악의 단초로 왜 한국전통음악에 주목했느냐”라는 질문에 권 감독은 “국악은 동아시아 국가나 서양 음악과 비교했을 때, 호흡과 시김새, 리듬(장단), 그리고 음색에서 매우 독창적인 미학을 가지고 있고, 자연의 음색을 살리는 악기라서 새로운 음악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굿모리의 시작은 권 예술감독의 유학생활 중 에피소드가 결정타가 됐다. 독일 교수가 권 감독에게 끊임없이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해 질문한 것. “서양음악을 배우러 간 제게 우리 전통음악을 묻는 것이 처음에는 의하했어요. 하지만 답을 해야 했기 때문에 국악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점점 국악기에 매료돼 갔어요.”
권은실은 굿모리의 예술감독을 맡자 본격적으로 국악기와 현대창작음악의 융합을 시도했다. 국내외 작곡가들에게 곡을 위촉해 국내와 해외에서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위촉곡으로 19번의 정기연주회와 중국, 러시아, 독일, 폴란드 등 국내외의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해외 작곡가에게 곡을 위촉할 경우 그들이 국악기 기반 곡을 작곡하는 것이 가능한지가 의문이다. 이에 대해 권 감독은 “서양의 작곡가들도 의외로 국악기를 접하면 그 매력에 빠져든다”고 전했다. 창단 초기에는 굿모리가 서양의 작곡가들에게 곡을 위촉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그들이 굿모리를 초청할 만큼 굿모리의 음악 세계는 세계를 향하고 있다.
처음부터 굿모리가 자신의 정체성에 제대로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창단 초기에는 단원들조차 현대음악 악보를 읽지 못할 만큼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는 것이 권 감독의 귀띔이다.
그러나 함께 공부하고 연습하면서 현대 악보와 새로운 연주법을 익혀 갔고, 바이올리스트 김지혜, 김보혜(서양타악기), 오영지(판소리), 서민기(생황) 그리고 현재 앙상블 대표를 맡고 있는 작곡가 이승은이 새로운 단원으로 영입되면서 굿모리의 음악적 정체성은 더 확장되고 있다. 그 결과 굿모리는 현재 한국 창작음악계에서 중요한 현대국악앙상블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 카이로 공연에 초연한 굿모리의 창작음악 호평
현대창작음악을 지향하는 굿모리의 확고한 신념은 ‘전통의 원형’에 대한 믿음이다. 이에 때라 그들의 음악에는 정악, 정가, 전통 타악과 같은 본류의 음악이 함께 놓인다. 이번 AUC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금 독주 ‘청성곡’, 정악합주 ‘영산회상’. 전통성악곽 ‘가락-우락’, 타악 독주 ‘설장구’ 등의 전통음악이 먼저 분위기를 선도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굿모리의 현대창작음악도 울려 퍼졌다. 이날은 두 개의 작품을 연주했는데, 모두 카이로의 자연을 모티브로 새롭게 창작한 곡이었다. 권은실의 창작음악 ‘White Shadow II for Quinte’와 이승은의 ‘Egypt Is the Gift of the Nile’이었다.
이 두 작품은 한국 전통악기와 바이올린을 결합해 전통음악의 음색을 현대적인 음악언어 안으로 확장한 곡이다.
권은실의 작품은 이집트 사하라의 이석(利石) 사막을 투영한 시각적 텍스처, 현대음악적 어법으로 재해석된 국악기의 무한한 스펙트럼을 특징으로 하고, 이승은의 작품은 이집트 문명의 상징인 나일강을 모티브로 흐르는 강물의 이미지와 시간의 축적, 문명의 호흡을 음악적으로 풀어냈다.
출국 전 권 감독은 “한국 전통 음악이 카이로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생소한 음악이었고, 악기 또한 달랐기 때문. 하지만 우려는 기우임이 그날 공연에서 증명됐다. 의외로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한국 전통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 “이집트에 퍼져있는 K-컬처에 대한 이해도와 우리 전통음악의 매력이 더해져 공연장은 감동의 도가니가 됐어요.”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한국 전통 음악과 카이로 전통 음악의 만남이었다. 굿모리는 이날 AUC 아랍전통음악합주단(Arab Music Ensemble) 및 합창단과 함께 아랍권 대표 음악가들의 작품을 협연했다. 한국의 대금과 가야금, 해금이 아랍 음악 특유의 선율과 만나자 낯설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새로운 음향이 만들어졌고, 객석은 감동으로 넘실댔다.
특히 연주 곡 중 객원연주자로 함께 한 최병길의 장구와 이집트 전통타악기 타블라의 즉흥 베틀은 이번 연주회의 클라이막스로 연주회장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관객과 연주자들에게 음악으로 하나 되는 체험을 선물했다.
이집트의 유구한 역사와 한국의 전통음악이 만난 이번 공연은 단순히 “한국 문화를 소개했다”는 차원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 권 감독의 평가다. 서로 다른 문명이 예술을 통해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한국 전통음악이 동시대 세계 안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언어임을 증명한 무대였다는 것.
특히 우리의 전통 정가에 대한 카이로 관객들의 평가는 정확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중국 경극이나 일본 가부키와도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아했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굿모리의 해외교류 활동은 오는 10월에도 이어진다. 10월 31일 오후 3시 문화회관 비슬홀에서 정기연주회로 폴란드 Kwartludium앙상블과 교류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