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K팝, 아랍 표현의 자유에도 기여할까 2019-08-16
K팝 아이돌그룹의 중동지역 공연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슈퍼주니어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로 펼친 단독 공연은 전체 티켓이 3시간 만에 매진됐다.  [사진 제공=레이블SJ]
사진설명K팝 아이돌그룹의 중동지역 공연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슈퍼주니어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로 펼친 단독 공연은 전체 티켓이 3시간 만에 매진됐다. [사진 제공=레이블SJ]
방탄소년단(BTS)이 오는 10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스타디움 콘서트를 개최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외국 가수가 스타디움 단독 공연을 여는 건 처음이다. 방탄소년단이 무대를 펼치는 `킹 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은 최대 수용 인원이 6만8000명을 넘는 공연장으로, 현지 `BTS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한다.

한국 아이돌이 아랍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글로벌 신드롬으로 커진 한반도 대중음악이 세계에서 제일 보수적인 중동까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몇몇 국가 집권층은 스스로 보수성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문화 개방 정책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런 목적에 딱 어울리는 콘텐츠가 K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비아이지는 지난 6월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청와대 공식 오찬에 초대됐다.
[사진 제공 = 비아이지 인스타그램]
사진설명비아이지는 지난 6월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청와대 공식 오찬에 초대됐다. [사진 제공 = 비아이지 인스타그램]
올해는 중동 국가 중에서도 유독 사우디아라비아에서 K팝이 각광받았다. 슈퍼주니어는 지난달 12일 이 나라 제2 도시 제다에 위치한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에서 `슈퍼 쇼 7S`를 선보였다. 아시아 가수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단독으로 연 이번 공연에는 팬 4000여 명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현지 예매 사이트에는 티켓 구입에 실패한 1만5000명이 몰려 서버가 멈추기도 했다. "아랍 엘프(슈퍼주니어 팬클럽)들 사랑한다"고 외친 슈퍼주니어는 이튿날인 13일 일부 멤버가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시즌 페스티벌`에 올라 또 한 번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두 보이그룹이 인기를 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사회 진보가 가장 더딘 축에 속한다. 와하비즘(Wahabism·이슬람 원리주의)을 추종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국 문화 콘텐츠 수입 범위가 좁았으며, 여성에게 운전을 금지할 만큼 여성 인권이 낮은 수준이다. 변화는 2017년 실권을 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몰고 왔다. 지난해 1월 축구경기장에 여성 입장을 허용한 데 이어 같은 해 6월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여권 신장 정책을 부분적이나마 추진 중이다.


K팝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국가 개발 프로젝트 `비전 2030` 일환으로 풀이된다. 석유 의존 경제에서 첨단기술과 투자 중심지로 거듭나자는 이 프로젝트에 따라 `젊은 사우디` 이미지를 주기에 K팝이 적합한 도구라는 의미다.

한국이슬람학회장인 윤용수 부산외대 아랍어과 교수는 "중동에서 K팝과 K드라마가 인기를 끈 건 10년 전 시작된 이야기다. 이는 글로벌 현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가 다른 나라에 비해 폐쇄적이라고 해서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 청소년 역시 아랍에미리트(UAE) 등 인접 국가와 왕래를 많이 하면서 한류를 접하기 때문에 젊은 층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국가에서 억누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미국 문화에는 아직도 거부감이 크지만, 정서적인 공감대가 비교적 큰 한류에는 좀 더 관대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중동에서 진입 장벽이 최고 높은 것으로 여겨졌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문이 열리면서 한국 연예기획사는 전체 아랍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이그룹 비아이지(B.I.G)는 지난 6월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참석한 청와대 공식 오찬에 초대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내 재계 그룹 총수들이 자리한 이 오찬에 참석한 국내 아이돌은 비아이지가 유일했다. 비결은 아랍 유명 노래를 따라 부른 `커버(cover) 영상`이다. 비아이지가 유튜브에 올린 아랍 유명곡 커버 영상은 최대 441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자신들의 오리지널 노래보다 더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댓글 창에는 아랍 문자가 넘친다.

UAE 등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중동 국가에서는 K팝 소비가 일상화돼 있다. 엑소는 오는 10월 두바이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입성한다. 엑소는 지난해 인기곡 `파워(Power)`가 두바이 분수쇼 배경음악으로 수차례 선정되고, 세계 최고 건물 부르즈 칼리파에서 이들을 주제로 초대형 LED 쇼가 펼쳐지는 등 현지에서 탄탄한 팬덤을 자랑하고 있다. 연초 걸그룹 모모랜드는 두바이 `면세 테니스 스타디움`에서 팬콘(팬미팅+콘서트)을 개최해 팬 5000여 명과 만났다. 신인 걸그룹 써드아이는 최근 모로코 가수 마날의 `슬레이(Slay)`와 `타지(Taj)`를 커버한 영상으로 아랍권 K팝 팬을 겨냥했다.

각종 보고서와 엔터테인먼트 전문가에 따르면 중동 음악 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크다.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 대표적 위성방송사업자인 OSN의 데이비드 부토락 전 최고경영자(CEO)는 MENA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불법 복제가 연간 5억달러 규모로 발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시장은 음지에서 나오는 MENA 엔터테인먼트 매출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지난해 11월 바레인, 이집트, 쿠웨이트, 레바논,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UAE를 포함한 13개 MENA 지역에 진출했다. 음원 디지털화에 강한 K팝은 현지 음악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다만 아직 인권 보장 수준이 낮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K팝 가수가 공연을 펼치는 것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누구든 자기 목소리를 내라"고 연설한 만큼 소수자 인권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 공연은 보이콧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세계적 힙합 가수 니키 미나즈는 지난달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릴 음악축제 공연을 취소한 바 있다.

 

미나즈는 "여성 인권, 동성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내 지지를 명백히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 이유를 전했다.

 

이에 윤 교수는 "서양 기준으로 봤을 때 사우디아라비아 인권 보장 수준이 미흡한 것은 맞는다"며 "그러나 서구에서 남녀 차별로 보는 몇몇 지점이 아랍에서는 남녀 구별로 여겨진다"며 문화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팝이 아랍문화권 소수자 차별을 줄일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의 문화예술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데, 방탄소년단을 통해 그것이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며 "여타 국가 대중가요에 비해 K팝은 건강한 가사로 아랍에서 선호하므로 이런 부분을 적극 활용하면 확산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매일경제 (2019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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