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와 유럽의 가교! 카사블랑카로 명성 2020-04-16

베르베르어-아랍어 공식언어프랑스어 보편화

입헌군주제-수도 라바트-최대 도시 카사블랑카

대서양 해안 황금어장 수산물 수출국가로 부상

‘1962년 한국수교경협 활발관광자원도 풍부

 2019년 3월 17일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시내에서 학생들이 뉴질랜드의 이슬람 사원 테러에 항의하고 있다.  /뉴시스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관문

 

아프리카 대륙 북서부에 위치한 모로코 왕국(Kingdom of Morocco)1962년 수교 후, 국제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적극 지지하는 등 우리와 우호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우방국이다. 튀니지와 더불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유이하게 한국인이 비자 없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19607, 손원일(당시 주서독 대사) 특사 일행은 모로코를 친선 방문하고, 상호간의 이해증진과 외교관계 수립에 관하여 합의를 보았다. 모로코는 비동맹외교 표방 하에 따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모두 외교관계를 맺었다. 1962년 대한민국, 198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아프리카의 서북쪽에 있는 위치하며, 라바트가 수도인 모로코는 동쪽으로 알제리, 남쪽으로 모리타니 등과 국경을 접한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대서양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지중해까지 긴 해안선이 이어진다. 스페인, 포르투갈과도 가까워서 모로코 국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밀입국자들이 엄청나게 몰려든다.

 

인구는 약 3574(2017년 기준)이며, 국가 면적은 면적 446,550이다. 수도인 정치 중심부는 라바트(Rabat)이고 가장 큰 도시는 카사블랑카’(Casablanca)이다.

 

BC 2000년대 말 베르베르(Berber)족이 모로코에 들어왔으며, BC 12세기에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교역소를 세웠고, BC 5세기에 카르타고인들이 대서양 연안에 거점을 만들었다. 카르타고가 멸망한 뒤, 베르베르족 왕 주바 2(Juba II, BC 25~AD 24 재위)가 통치하던 모로코는 로마의 충실한 동맹국이 되었다.

 

이에 베르베르어를 아랍어와 더불어 공식어이기에 대부분 모로코인들은 베르베르어와 모로코 아랍어 중 적어도 한 언어를 구사한다. 그럼에도 모로코는 식민지 역사와 지중해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프랑스어를 공공기관 및 언론, 식자층의 일상어로 사용하는 최대의 외국어이고 제1외국어로 가르친다. 모로코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모로코는 수니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취급하고 있어, 인구의 99.7%가 이슬람교 수니파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테러리스트들의 사상이라 하여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아랍권 나라와 더불어 외부 기독교 선교는 법으로 엄격히 막고 있다.

 

강력한 입헌군주제 민주화 여정

 

모로코는 20세기 초 스페인과 프랑스의 침입을 받았고, 1912년에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모로코는 연합군이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사용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령 모로코는 195632일에서 독립하였고, 스페인령 모로코는 195647일에 독립하였다.

 

모하메드 5세는 1957년 자신을 왕으로 격상시켰고 4년 뒤 아들인 하산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하산 2세는 과거 모로코를 38년 동안 철권 통치했던 군주이다. 196133일에 자신의 아버지인 무함마드 5세가 사망하면서 모로코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모로코는 전제군주제는 아니지만 강력한 의회 입헌군주제 국가로 국왕은 막강한 집권력을 행사한다. 모로코는 1970, 1972, 1992, 1996, 2011년에 헌법을 개정하며 다른 아랍권에 비해 착실히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사법권은 정부와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의회에 의해 행사된다.

 

하산 2세 다음으로 1999년 왕위에 오른 모하메드 6세가 의회 해산권, 비상사태 선포권 등 거의 모든 실권을 행사해왔다. 1999723, 하산 2세가 서거하자 왕위를 이어받아 일주일 뒤 모로코의 국왕으로 등극한 무하마드 6(1963821일 생)는 가난과 부패를 말소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모로코의 인권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2011년 모로코의 시위는 부패, 정치인들을 향한 반감과 경제위기로 자극받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으로 시작되었다. 무함마드 6세는 시위대에게 전진된 개혁을 약속했다. 동년 39일의 연설에서 왕은 사법부가 왕으로부터 독립되며 의회가 탄핵을 비롯한 견제의 능력을 얻을 것이라고 확약했다. 왕은 개헌위원회를 구성하여 6월까지 신헌법의 초안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2011년의 헌법 개정에 따라 모하메드 6세 국왕이 군대·종교에 대한 통제권을 인정받고 국가원수의 지위를 지키는 대신, 현재 국왕이 임명하는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한 다수당에서 임명해 정부 대표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201171, 유권자들은 왕의 다음과 같은 정치 개혁안을 승인했다.

 

베르베르어를 아랍어와 더불어 공식어로 지정한다. 고위 공무원은 국왕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로 임명되던 과거와 다르게 총리가 임명에 개입한다. 총리는 정부의 수반이며 국회해산권을 갖는다. 왕을 대신하여 총리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각료회의를 주재한다. 의회는 왕이 갖고 있던 사면권을 갖는다.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된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시민, 사회적 권리를 갖는다. 이전의 경우, 1996년 헌법으로 부여된 정치적 평등만이 보장되었다.

 2009년 5월 18일 ‘제2회 아랍문화축전’ 행사 리허설이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모로코의 ‘앗사파 그나우아’ 타악밴드가 민속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뉴시스

모로코 제1의 도시 카사블랑카

 

모로코의 실제 수도는 라바트이지만 경제와 무역의 중심지는 수도 라바트에서 남쪽으로 90Km 떨어진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카사블랑카이다. 모로코 최대의 상업도시 카사블랑카(Casablanca)흰 집이라는 뜻으로 1575년 이 도시를 건설한 포르투갈사람에 의해 붙여졌다. 33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주요한 항구일 뿐만 아니라 모로코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시이다.

 

현재 모하메드5세 공항은 서부 아프리카 제일의 국제공항으로 유럽과 남부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로 꼽히고 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사이, 프랑스 폭동이 일어난 핵심 거점으로 카사블랑카는 왕립 모로코 해군이 주둔한 제1기지가 있다. 카사블랑카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중요한 전략적 항구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규모가 큰 미국 공군기지의 주둔지였다.

 

전 세계의 모든 도시들 중 할리우드는 바로 이곳을 택해 이국적 식민지 땅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다. 카사블랑카는 1942년 제작된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 폴 헨레이드 주연의 로맨틱 드라마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모로코의 도시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담아 큰 인기를 얻었으나 촬영 당시 북아프리카에서는 횃불 작전이라는 전쟁이 벌어져 실제로 카사블랑카에서는 촬영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최대의 정어리 수출국가

 

모로코는 관광자원도 풍부하여 외화수입을 크게 올리고 있다. 그 밖에 유럽연합 여러 나라에 체류·이주한 모로코인으로부터 오는 송금도 외화수입원이 되고 있다. 또한 모로코 해안은 백만 평방 마일 배타적 경제수업으로 인해 세계의 주요 해산물 생산 국가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주로 유럽을 위주로 수산물 교역을 이루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과의 교역을 수십 년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의 정어리 수출국가이다.

 

모로코는 2009년 국가 어업 부문의 경쟁력과 개발을 위해 하리우티스’(HALIEUTIS) 전략기관을 설립하였다. 하리우티스는 2009년 채택되어 사회와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 중 하나로 국가어업자원의 지속발전가능성을 도모하며, 수산물 수출만으로 2020년까지 수산물 국내 총생산량을 3배로 증가시키는 국가적 프로젝트이다.

 

모로코는 1987년 유럽 연합(EU) 가입을 신청했지만 실패한 적이 있다. 유럽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1984년에는 서사하라(Western Sahara) 문제로 인해 아프리카연합(AU)에서 탈퇴했지만 2017년에 아프리카 연합에 재가입했다.

 

2017131AU54개 회원국 중에서 39개국이 모로코의 복귀를 승인한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알제리 등 일부 회원국은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SADR) 지위를 둘러싸고 끝까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2018년 6월 30일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과 무니아 부세타 외교국제협력부 국무장관이 제7차 한-모로코 공동위원회 합의의사록에 서명하고 있다. /뉴시스

 

 

 

출처 서울일보(2020.4.16.)

http://www.seoul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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