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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4,500년 세월 견딘 조세르 피라미드 2017-12-19

 

 

 

세계 7대 불가사의를 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를 만한 게 이집트 곳곳에 현존하는 70여 개의 피라미드다. 대략 4천50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원형을 보존한 덕분에 여전히 신비롭고 위대한 건축물로 여겨진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집트 피라미드가 수도인 카이로 외곽의 기자(Giza) 지역에 우뚝 서 있는 대(大)피라미드다. 기자의 고지대에 나란히 배치된 3개 피라미드군(群) 중 가장 웅장한 것이 쿠푸왕(B.C.2589~2566)의 대피라미드. 

 

 

직접 가보지는 못했을지라도 누구나 사진으로 한 번쯤 봤을 법한 피라미드가 바로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다. 세계 인류문화 유산의 최고 석조 건축물로 꼽힌다. 

 

 

 


▲카이로 외곽 기자지역에 있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카이로 남서쪽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 피라미드 [사진/한상용 특파원]

 

 

이집트 피라미드의 기원과 역사를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롭다. 기자 지역 피라미드 말고도 역사가 몇 세대 더 오래되고 조형미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피라미드들이 기자 부근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기자 지역에서 대추야자 나무가 서 있는 좁은 도로를 따라 아래쪽으로 10km가량 내려가면 태초의 피라미드가 주는 신비로움을 체험할 수 있다. 그 첫 주인공은 '사카라'로 불리는 사막 지대에서 위용을 뽐내는 6층짜리 피라미드다.

 

 

사카라 피라미드로 알려진 이 피라미드의 정식 명칭은 조세르 피라미드(Djoser Pyramid)'다. 이집트 고왕국 제3왕조의 조세르왕(BC 2665~BC 2645) 때 지어진 이집트의 첫 피라미드라서 그 이름이 붙었다. 계단식 네모뿔 형상이어서 '스텝(Step) 피라미드'라고도 불린다. 세계 건축역사의 한 장을 이루는 인류 최초의 피라미드식 석조 건물이다.

 

 

높이가 60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여서 맑은 날씨에는 약 30㎞ 떨어진 카이로 일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쿠푸왕 대피라미드(144m) 높이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지만 이전 파라오의 묘에 비해선 압도적인 크기다. 이전 왕들의 직육면체 형태 '마스타바' 묘보다 60배 이상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세르 피라미드 원형은 세계 최초 피라미드라는 말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보존돼 있다.

 

 

지난 10월 현장을 찾아갔을 때 정면과 우측면 1층을 보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4천700년 전에 지어졌다고 믿기가 어려울 만큼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듯했다. 이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얼마나 강력한 왕권과 기술력이 필요했을까? 

 

 

요즘의 일반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로 따지면 대략 20층 높이다. 밑변의 길이는 동서로 121m, 남북으로 109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조세르 피라미드의 웅대함은 고대 파라오가 신과 같은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음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어떤 귀족이나 지방 토호 세력도 파라오의 권위에 덤비지 못했다는 얘기다. 조세르 파라오는 이 피라미드를 통해 영생을 꿈꾸면서 백성들의 절대적인 복종을 이끌었을 것이다. 

 

 

◇ '건축의 신' 임호테프

 

조세르 피라미드의 설계와 건축은 당시 재상이자 탁월한 건축가였던 임호테프가 총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호테프는 이집트 고대사에서 '건축의 신'이나 '창조의 신 프타의 아들'로 기록될 만큼 신격화된 인물이다. 그는 당시로써는 기존의 마스타바 왕묘 설계에서 최소 6발짝을 더 나아가 거대한 마스타바 6개를 쌓아 올린 새로운 모양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창조했다. 왕묘 조성과 건축에 관한 당시 사고와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조세르 피라미드 단지에는 6층짜리 석조 건축물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피라미드의 유일한 출입구와 연결된 기둥형 복도와 더불어 거대한 안뜰, 장제신전 등이 피라미드 복합체를 이루고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신전의 담벼락에는 13개의 가짜 문과 남쪽 끝자락에 1개의 진짜 문이 있다. 이 진짜 문이 지금의 유일한 출입문으로 남아 있다. 

 

 

이 문을 거쳐 신전 내부로 들어서면 높이 6.6m의 기둥 20개가 나란히 서 있는 장엄한 분위기를 맞게 된다. 기둥 복도를 지나 안뜰의 중앙에 서면 바로 오른편에 세트 신전이 보인다. 파라오가 내세에 위대한 신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기원했던 신성한 장소다. 직선과 곡선 형태의 암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신전이다. 

 

 

신전 곳곳의 기둥 돌 이음새 부분을 둥글게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일찌감치 건축과 예술의 조화를 시도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기둥 복도를 나서면 안뜰이 나오는데 지금은 사막으로 변해 있다. 이 때문에 모래 위를 걸으면서 피라미드를 구경하는 느낌이 든다. 파라오 시대에 안뜰에서는 왕위갱신제라는 세트 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안뜰 가운데에 이 축제의 흔적이 남이 있다. 세트는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의 범람이 끝나고 새로운 싹이 돋아나는 겨울철 초반에 진행된 축제다. 

 

 


▲우나스 피라미드 내부의 '피라미드 텍스트'

 

 

◇ 가장 오래된 종교 주문 문자 발견

 

조세르 피라미드의 동남쪽 끝자락에는 우나스(Unas) 피라미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세르 피라미드 앞쪽의 골짜기를 따라 100여m를 걸어가면 3분의 1쯤 허물어진 유적을 만난다. 얼핏 보면 일반 피라미드의 삼각형 구도가 아니어서 단순히 돌과 모래로 뒤덮인 산등성이 같아 보인다. 높이가 약 43m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고고학계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 최초의 피라미드 텍스트(Pyramid Text)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피라미드 텍스트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종교적 주문(呪文)을 담은 문자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제한적으로 개방되는 우나스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 봤다. 이 피라미드 내부는 보존 등을 이유로 오전에만 공개하고 있다. 프랑스 고고학자 가스통 마스페로가 1881년 처음 들어간 이 피라미드는 외부공기 유입이 묘실 내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1996년부터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가 2016년 이후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우나스 피라미드 안은 입구에 마련된 비탈진 계단을 따라 45도 각도로 10여m 내려가면 닿는다. 좁은 통로로 작은 내실에 도착하고 나서 또다시 허리를 굽혀 좁은 통로를 10m가량 더 들어갔다. 그러자 우나스 피라미드의 핵심부인 묘실이 나타났다. 

 

 

입구에 연결된 통로 끝에 위치한 묘실의 4개 벽면에는 피라미드 텍스트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천장에는 별이 가득하다. 4천300여년 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해 보였다. 

 

 

청색과 녹색 물감으로 그린 상형 문자가 오른쪽 벽면에 보였다. 습기 영향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문자가 있지만 대체로 육안 식별이 가능하다. 모두 228개 주문으로 이뤄진 피라미드 텍스트에는 이집트인의 내세관과 파라오에 대한 축복, 신과 파라오를 결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피라미드 텍스트는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내부에선 발견되지 않은 것이어서 더 많은 주목을 받는다. 대피라미드에는 문자는 물론 벽화도 없다.

 

 

고대 피라미드 건축은 조세르의 왕을 시작으로 전성기를 맞는다. 그 전성기는 기자 지역에서 절정에 달하기 전에 사카라 바로 아래쪽의 다슈르(Dashur)에서 과도기를 거친다. 고왕국 제4왕조의 첫 왕인 스네푸르는 다슈르에 2개, 페이윰에 1개 등 대형 피라미드 3개를 지었다. 

 

 

 


▲굴절 피라미드 전경

 

 

 


▲굴절 피라미드 아랫부분을 구성하는 암석들

 

 

◇ 매끈한 외장석 돋보이는 굴절 피라미드 

 

그 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큰 피라미드 위에 작은 피라미드를 얹은 모습의 과도기 형태인 굴절 피라미드(Bent Pyramid)다. 이 피라미드의 외장석은 4천 년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햇빛을 그대로 반사할 정도로 반짝인다. 표면에 손을 대보면 매끄러운 느낌이 든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와 조세르 피라미드에 볼 수 없는 매끈한 외장석 때문이다. 

 

 

과거 기자와 사카라의 피라미드를 둘러쌌던 외장석은 이슬람 시대(AD 641~1798) 들어 카이로 지역의 요새와 모스크를 짓는 데 쓰여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보다는 카이로에서 조금 더 멀리 떻어진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에는 외장석이 다수 남아 있다. 

 

 

스네프루르는 사후(死後) 들어갈 피라미드 건축에 남다른 집착을 보이면서 지금까지 고고학계에 이름을 떨친 파라오다. 그는 굴절 피라미드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자신이 묻힐 새 피라미드를 지었다. 저녁 노을에 빨갛게 보일 때가 있어 '붉은 피라미드(Red Pyramid)'로 불리는데 직선의 사각뿔 형태로는 최초의 피라미드다. 자연스러운 모습 때문에 '진정한 피라미드(True Pyramid)'로 불린다. 

 

 

 

 


▲붉은 피라미드 입구를 향해 올라가는 관광객

 

 

이 피라미드는 입장권만 구입하면 내부를 볼 수 있다. 피라미드 중간쯤에 나 있는 입구를 거쳐 나무로 만든 좁은 계단을 타고 20여m를 내려가면 복도와 묘실이 나온다. 하지만 파라오의 시신이 담겼을 석관은 보이지 않는다. 공기가 잘 순환되지 않은 탓에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심하게 자극한다. 그러나 이 냄새에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땀이 섞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세르 피라미드를 시작으로 나타난 굴절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는 고왕조 시대 피라미드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스네프루의 아들인 쿠푸왕이 기자에 대피라미드를 건설하면서 이집트 피라미드 시대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중한 관광자원으로 변신한 피라미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출처: (c) 연합뉴스(2017년 12월 13일)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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