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워본 사람은 안다. 물과 바람 그리고 햇살만으로는 꽃을 피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꽃이 잘 자라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꽃 자체의 간절함이다. 반드시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없으면 꽃은 쉽게 피지 않는다. 두바이가 사막에서 꽃을 피워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런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피어난 꽃, 두바이. 그 거대한 꽃을 보는 시간.
두바이의 생명줄,
올드 수크를 나오니 바로 거대한 물줄기가 보였다. 이렇게 빨리 두바이의 바다를 볼 줄은 몰랐다. 강처럼 보이지만 사실 바다이다. 불과 100년 전 작은 진주잡이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현재의 두바이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곳이 사실상 두바이가 태어난 곳이다.
아브라라는 배를 탔다. 뱃삯은 믿기지 않게 1디르함(한화 약 300원)이었다. 2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배에 탔다.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거의 일반인들이었다. 피부색이 검은 서남아시아인들이지만 이들은 명백한 두바이 사람들이다.
아주 약간의 비린내와 건너편 스파이스 수크에서 묻어나오는 독특한 향신료 냄새 그리고 페르시아만에서 불어오는 미풍. 바다를 작은 배로 이동하는 이른바, 바다를 건너가는 것은 분명 5분짜리 특이한 경험이었다.
나는 향신료 시장과 금시장을 제쳐두고 아브라를 연달아 두 번이나 더 탔다. 향신료시장과 금시장이 함께 있는 이곳은 관광객들보다 현지인들과 무역상들이 더 많이 있는 곳으로 두바이의 금 거래량은 세계 1위로 알려져 있다. 시장을 둘러보고 다시 지하철로 나왔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두바이몰을 보기 위해서다.
사막의 꽃, 실수로 지하철을 반대로 타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 도착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긴장을 놓아버린 셈인데 두바이의 치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데에 이미 마음을 편하게 먹어버린 탓이다.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종점까지 가면서 멀리서 부르즈 칼리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불과 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두바이가 공허한 사막지대였음을 감안한다면 사막 위에 불쑥 솟아난 부르즈 칼리파는 어떤 바람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늘에 닿기를, 그것이 두바이 그리고 부르즈 칼리파의 간절한 모습이었다.
다시 두바이몰로 향했다. 지하철에 내려 두바이몰로 향할 때다. 일단의 사람들이 웅성거림을 동반해 한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무리에서는 약간의 탄성도 들렸다. 바로 앞에 나타난 부르즈 칼리파. 나는 두바이몰과 부르즈 칼리파가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여행객 차림의 사람들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하철 통로 창문에서 보이던 그것을 경이의 눈빛으로 담고 있었다. 인도 북쪽을 달리다가 갑자기 히말라야의 끝자락을 보게 된 것과 같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지하철을 나오자 부르즈 칼리파는 더 가깝고 선명하게 보였다. 도무지 빌딩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기품이 있으며 우아하고 빈틈이 없었다. 이것은 빌딩이 아닌 하나의 건축물이었다.
나는 하늘 위로 솟은 부르즈 칼리파를 보며 몇 번이나 감탄을 했는지 모른다. 상당히 앞서는 이야기지만 부르즈 칼리파를 보았다면, 두바이 여행은 솔직히 반을 넘은 셈이다. 그만큼 무게감과 존재감을 모두 지니고 있는 부르즈 칼리파. 사막의 꽃이라는 히메칼리스의 기하학적 모양과 이슬람 건축양식을 혼합해 디자인 된 부르즈 칼리파. 이 21세기 바벨탑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작품이다.
지상 최대의 쇼핑몰, 두바이몰로 들어섰다. 세계 최대 크기의 쇼핑몰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은 두바이몰은 두바이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인 최대, 최고, 최상의 기치가 완벽하게 구현된 두바이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전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모두 들어와 있으며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 또한 모두 입점해 있다. 내부 매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서 실제로 직선으로 왕복만을 했을 뿐인데 벌써 지쳐버렸다.
저녁 여섯 시가 되어 이곳의 명물인 분수쇼를 보러갔다. 내부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외부에는 분수쇼를 보러 온 사람들로 더 혼잡했다.
이 사람들이 두바이에서 쓰고 가는 돈이 얼마나 될까. 사실상 두바이의 원유저장량은 바로 옆 형제 토후국인 아부다비가 가지고 있는 양의 10%도 채 안 된다고 한다.
인공 호수 건너 부르즈 칼리파가 보인다. 밤에 빛나는 그것은 지금 두바이에 떠있는 단 하나의 별로 하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땅으로 내려와 조용히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거대한 일탈이 시작되는 곳,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세 시 반에 사막 투어를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암젓이라는 이름의 거구의 투어기사는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두바이에서 태어났지만 분명히 파키스탄 사람임을 강조했고 자신도 두바이의 발전을 보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 부르즈 칼리파에서 시작해 에미리츠 몰까지 모든 땅에 있던 큰 건물은 불과 십여 년 전 호텔, 딱 하나뿐이었다고 했다.
암젓과 나는 두바이의 위성도시인 샤르자까지 가서 한 무리의 영국인 가족을 태우고 다시 사막으로 향했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풍경은 단조로운 땅과 빛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두바이의 얼마 전 모습이었다.
사막투어를 하기 위해 모인 장소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의 지프들은 차바퀴의 공기를 조금씩 빼기 시작했고 나는 길거리 상인에게 까따라라는 아라비아 두건을 하나 샀다. 아라비아 로렌스, 누구라도 순간적으로 스치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차량은 곧바로 출발했다.
수 십대의 지프가 일제히 사막으로 들어가 저마다 앞서 달리는 장면은 색다른 장관이었다. 차들이 점점이 멀어져 가서 다른 사막 지대로 천천히 퍼질 때는 마치 나비가 사막에서 부유를 하는 것 같았다.
그 모래는 다시 다른 모래들을 조금 더 밀어냈다. 모래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조금 부는 사막은 모든 것을 공허감으로 꽉 채웠다.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다니며 하루 종일 만들어놓은 그림을 나는 그렇게 발로 밟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막이 허락한 나만의 그림이기도 했다. 영국인 가족들과 인사를 했다. 나이가 육십이 넘었지만 굉장한 메탈러였다.
모두 영국의 밴드였다. 아직 철이 덜든 사내 두 명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메탈 이야기를 했다. 부유와 일탈 그리고 공허감과 자유. 그것이 결국 사막의 다른 이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뷔페식단에 맞춰 한꺼번에 몰렸으나 어느 누구하나 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막에서의 조급함이란 얼마나 값싼 행동인지 모두들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말 인형을 뒤집어쓰고 연극을 하는 공연이 있었고 밸리 댄서가 춤도 추었다. 나는 조용히 뒤로 나와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막에서의 일몰만큼 보고 싶었던 것이 사막의 별이었지만 하늘은 오늘 어두운 채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막이 허락하지 않는 밤하늘,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꿈속에 머물기를, 부르즈는 아랍어로 탑이라는 뜻이다. 아랍의 탑, 나는 이곳을 마지막으로 택했다. 퍼블릭 비치에서도 보았고 메디나 주메이라 수크에서도 보았지만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부르즈 칼리파정상에 올라 두바이 시내의 야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부르즈 알 아랍의 야경과 퍼블릭 비치의 해변 그리고 페르시아만의 바다가 가지고 있는 조합은 나를 더욱 그곳으로 이끌었다. 게다가 그곳에서의 선셋이라면.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그냥 바다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놀았다. 부르즈 알 아랍은 해변의 끝에서 그들과 함께 있었다. 해가 지자 부르즈 알 아랍이 색을 입기 시작했다. 보라와 분홍, 초록과 노랑 그리고 하늘과 군청 등 여러 가지 색들이 호텔을 감싸며 빛을 발했다. 하늘은 이미 같은 색들로 빠르게 번져간 이후였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조용히 흔들리던 야자수, 나무에서 들리던 작은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 보고 느낀 것이 모두 이 시간에 들어있었다. 그들이 준 평화의 시간 혹은 꿈같은 공간. 저 멀리 이슬람 사원에서 아잔-이슬람교에서 예배의 시각을 알리는 육성에 의한 부름의 소리가 대지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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