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북아프리카의 자원 강국 ‘알제리(Algeria)’ 2020-02-20

[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알제리(아랍어: 알자자이르, 프랑스어: Algérie), 또는 알제리 인민민주공화국은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국가다. 알제는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알제리 북쪽 끝에 있다. 남북 길이 2,000km, 동서너비 1,800km로 세계 10번째로 넓고 아프리카에서 두번째이다. 알제리는 북동쪽에 튀니지, 동쪽에 리비아, 서쪽에 모로코, 남서쪽에 서사하라, 모리타니, 말리, 남동쪽에 니제르, 그리고 북쪽으로 지중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남부의 사하라 지역은 전 국토의 85%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북쪽 지중해 해안의 작은 지역 '텔'에는 평원과 아틀라스 산맥계의 산줄기들이 산재해있다. 텔 지역은 조산대로 주기적으로 지진이 발생한다. 이 산맥계의 지역은 북쪽부터 다음과 나뉜다. 첫째, 해안지대 및 그 남쪽 평원, 둘째, 모로코에서 튀니지까지의 마그리브 지역으로 그 연장인 텔아틀라스 산맥에는 최고봉 투브칼 산(4,165m)이 있다. 셋째, 비가 적고 증발이 많은 오(Hauts) 고지대, 넷째, 남쪽 건조한 사하라 사막과 마그리브 지역을 분리하는 사하라아틀라스 산맥이다. 사하라 지역에 오아시스와 지하수들이 있지만 대표적 하천은 북쪽에 있다. 참나무, 향나무 등 침엽수림은 북동부와 텔아틀라스에만 있으며 오 고지대에서는 스텝 기후의 영향으로 풀과 덤불만 자란다. 이곳의 표범, 치타, 여러 종의 가젤 영양은 멸종위기다.

지중해성 기후의 북부지역 강우량은 매우 적고(평균 800~1,000㎜ 이하) 매년 차이가 크며 기온은 11~2월 평균 12℃ 미만이고 7~8월 평균 30℃이다. 사하라아틀라스 산맥 남부 경계선은 연강우량이 100㎜ 이하다. 아틀라스 산맥 고지는 항상 눈이 쌓여있지만 보통 200~400㎜ 온다. 겨울(12∼3월)에 비가 오며, 나머지 기간은 가뭄 상태가 계속된다. 사막기후의 남부는 낮에는 45℃ 이상이 많고 밤엔 10℃ 내외라 일교차가 크다. 해안지역은 가장 따뜻한 달과 추운 달의 기온 차가 11℃ 정도로 폭이 작다. 기온 변화 폭은 내륙으로 갈수록 높고, 사막에서 가장 높다.

역사를 보면, B.C 1,000년초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정착했고, 튀니지의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가장 중요한 도시였고 후에 카르타고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B.C 146년 카르타고는 로마에 멸망했고, 40년 로마는 해안지방을 확고히 지배하며 알제리는 로마인들이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라 부르던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해안 배후지역은 로마의 통치권 밖에 있었다. 5세기 로마 멸망 후 반달족, 뒤를 이어 비잔틴족이 침입해왔으며, 이 시기 그리스도교 세력이 커졌고, 라틴어가 북부 아프리카 전역에 퍼졌다. 7세기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711년까지 북아프리카 전역이 우마이야드족에 넘어가며 베르베르족은 이슬람교에 교화되어갔다.

740년 이교인 카리지 영향으로 북아프리카인은 우마이야드족의 통치에서 벗어났다. 그뒤 이슬람화된 베르베르족 제국들이 생겼는데, 스페인까지 진출한 알모라비데 왕조(1054경∼1130)와 알모아데 왕조(1130경∼1269)가 대표적이다. 이 시기가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였고, 알모아데 왕국 쇠퇴와 함께 베두인족이 오며 토착민들은 유목민화되었다. 16세기초 스페인이 북아프리카를 침입하자 아프리카인들은 오스만 제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1536년까지 이 지역에 효과적 통치체계가 확립됐다. 1830년 프랑스는 바르바리 제국의 해적행위가 지중해 무역을 위협했다는 구실로 알제리로 들어왔다.

1847년까지 프랑스군은 저항운동을 대부분 진압했으나 1884년까지 계속되었다. 1954∼55년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독립운동이 독립 전쟁으로 이어지며 프랑스는 군대 50만을 파견해 FLN을 탄압하고 독립운동을 진압하려 했다. 이 문제는 프랑스 제4공화국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1958년 FLN은 알제리 공화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하고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 이주민에 대한 저항운동을 강화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FLN은 1962년 7월 3일 독립을 성취했고, 대부분 프랑스인들은 알제리를 떠났다.

1962년 7월 5일 국민투표로 독립을 선포하고 9월 알제리 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아흐메드 벤 벨라가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1965년 국방장관인 후아리 부멘디엔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후아리 부메디엔(1965∼78년 집권) 대통령은 석유 등을 국유화하고 사회주의 정책과 국제적 비동맹 정책을 폈고 오일쇼크로 막대한 외화 수익으로 황금기를 누렸다. 1978년 부메디엔 사망 후 차들리 벤제디드(1979∼92 집권) 장군이 대통령이 되었으며, 1985년부터 유가가 하락해 알제리는 경제위기에 부채의 급증과 보조금의 대대적 축소로 물가와 실업률이 급증했다. 실업자들 사이에서 정권에 대한 반감이 늘었고, 1988년에 보조금 축소와 물가인상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1989년 헌법개정으로 사회주의는 폐지되고 다당제가 되었다. 1990년 자유 총선으로 이슬람 구국전선(FIS)이 231석 중 188석을 차지하고 여당 FNL은 15석이 예상되자 군부는 의회 결선투표 취소 및 대통령 축출과 FIS를 불법화시키면서 정권을 장악했다. 정권이 이슬람 세력들을 강경 탄압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반정부운동과 테러로 대항했다. 무장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정부 진압이 실패하며1995년 내전(~2002년)에 돌입했다. 1999년부터 압델라지드 부테플리카가 대통령이 되었고 이슬람주의 세력을 사면하는 조건으로 2000년 이슬람해방군(AIS)는 해산되었다. 그러나 무장이슬람그룹(GIA)과 여기서 나온 살라피스트 설교 전투그룹(GSPC)은 항복하지 않았다. GIA는 정부군의 소탕으로 쇠퇴했고, GSPC만이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로 개명해 활동했지만 세력이 줄면서 알제리 내전은 2003년경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들로 치안이 불안한 편이다. 2014년 4월 17일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4선에 성공하며 2019년까지 19년 동안 재임하게 됐다. 또 다시 그가 출마를 선언하자 2019년 3월 5일 대학생과 시민들은 반대 시위를 했고 결국 포기를 밝히고 선거에 나오지 않았다. 시위는 계속됐고 군부도 부테플리카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했다. 부테플리카는 사임했고 알제리 의회는 벤 샬라 국회의장을 임시대통령에 지명했다. 대선은 2019년 12월 12일에 치른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알제리는 부분적으로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개도국형 중앙계획경제체제이다. 탄화수소, 광업, 중공업, 운송업, 금융업, 해외무역 부문을 점차 국유화했으나, 소비재 생산 일부 경공업과 주택건설업, 소매업, 소규모 부동산, 농업부문은 개인이 관리한다. 경제활동인구의 1/5은 농업에 종사하며, 용역업, 건설업, 상업, 금융업, 제조업 순이다. 농업, 목축, 임업은 취업인구 60% 이상 종사하지만 전국토의 약 3%만 가경지로 대부분 개간이 되었으나 관개시설을 갖춘 곳은 많지 않고 생산성도 낮다.

재배 작물은 밀, 보리, 야채, 과일(포도, 오렌지, 감귤, 올리브 등), 완두, 콩, 담배, 사탕무 등이 있고, 오아시스에서 대추야자가 재배된다. 낙농이 장려되고 대부분 건조한 방목장 목초지에서 양, 염소, 소, 나귀, 노새, 낙타, 말 등을 기른다. 생산 농산물은 국내 수요량의 1/4에 불과해 나머지를 수입한다. 코르크 참나무가 많아 세계적인 코르크 생산국이다. 지중해 연안에 접해 있지만 어업은 발달하지 못했다. 공업은 식품, 화학, 자동차 조립, 섬유, 기계, 정유 등이 있다. 제조업은 액화천연가스(LNG)와 정제된 석유생산물, 기타 강철, 무쇠, 액화석유 가스(LPG), 나프타, 시멘트, 비료, 자전거, 경운기, 자동차 등을 생산한다. 경공업 생산품으로는 질그릇, 페인트, 폴리에스테르 섬유, 전기제품, 신발류, 밀가루, 식용유, 포도주, 담배 등이 있다.

광업 부문은 석유와 천연 가스 생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북부와 북동부에는 최대 천연가스(세계 9위) 매장지가 있고, 아프리카에서 리비아, 나이지리아 다음의 유전(세계 16위)이 있다. 아프리카 유일의 수은 생산국으로 세계 수요량의 약 1/10을 공급한다. 금속 자원은 인광석, 석탄, 철광석의 매장량이 많고, 기타 석고, 소금, 중정석, 점토, 아연, 구리, 납, 은 등도 채굴된다. 국영 기업 소나트래치는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기업이다. 대부분 전력은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며, 나머지는 수력발전소가 생산한다. 무역 실적을 보면 천연가스와 석유가 총수출액의 거의 대부분이고 기타 비료, 포도주, 감귤류, 철광석 등이 있다. 프랑스의 백만명 이상 재외 알제리인 노동자의 송금도 큰 외화 수입원이다.

아랍인이 국민의 4/5 이상이며 베르베르족이 19%이고 소수인 유럽인 대부분은 프랑스계이고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러시아인도 있다. 베르베르계 종족은 카바일족, 차우이아족, 음자브족 등과 사하라 남동부의 아하가르, 아드라르 대산괴의 오아시스 근처에 사는 투아레그족 유목민이다. 하라틴족은 아프리카 흑인 후예의 수단인들로, 알제리 전역에 산재하는 작은 오아시스에 모여 산다. 전체 3,220만명 중 2/5 이상이 15세 이하이며, 인구의 1/2이 도시에 산다.

공용어는 아랍어, 프랑스어, 베르베르어다. 대부분 사람이 2가지 언어를 쓴다. 프랑스어는 2,100만명이 의사소통어로 사용해서 알제리는 세계 두 번째 프랑스어 사용국이지만 프랑코포니 비참가국이다. 남유럽과 가까워 소수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몰타어, 영어,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이슬람교가 공식 종교이다. 이슬람 이전에 알제리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교부들이 활동하는 초대 교회 신학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지역이 이슬람 국가가 되면서 현재 알제리 종교인의 대다수는 무슬림이다. 알제리에서 타 종교는 차별과 탄압을 받는데, 2008년 개종을 불법으로 규정한 새 법령이 발효되면서 26개의 알제리 개신교 교회가 폐쇄되었다.

아동은 9년간 의무교육 대상이지만 해당자 가운데 90%만 혜택을 받는다. 25세 이상 인구의 4/5 이상이 정식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다. 고등교육의 중심지는 1879년 설립된 알제대학교다.

알제리의 철도는 북부에 집중되어 있다. 식민 시대부터 국도가 잘 정비되어 연안부의 간선도로는 전부 포장되어 있고, 도로는 2/3 정도가 포장되어 있다. 사하라 횡단도로 3개 중 가장 긴 골레아~타만라세트 간 포장도로는 남쪽으로 니제르와 말리로 연결된다. 대표적 항구 알제 외에 안나바, 아르제우, 베자이아, 오랑 등이 있다. 안나바, 알제, 오랑 등 5개의 국제공항이 있어 유럽 및 아프리카와 연결되고, 작은 공항과 비행장도 있다. 사하라의 교통수단이 낙타에서 자동차와 비행기로 바뀌었지만 낙타는 사하라사막을 횡단하는 주요 수단이다.

알제리 양탄자, 보석, 목공예품에는 전통적 예술양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알제리에는 많은 민속학, 고고학 박물관 등이 있으며, 초기 건축물의 본보기인 아름다운 반구형 지붕의 모스크가 많다. 대표적 관광지는 프랑스풍의 흰색 건물과 지중해가 어울어진 알제 카스바의 다르 하산 파샤, 다르 무스타파궁, 노트르담 성당 등이 있고, 티파사의 고대 로마도시 유적과 기독교 여인의 무덤, 세르셸의 원형경기장, 원형극장, 순교자광장 등, 가르 다이아의 무자부 계곡과 사하라 사막 중 가장 아름답고 오아시스가 가장 많은 타미문, 아틀라스 산맥 산간의 협곡마을 등이 있다.

알제리는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군대와 국방 예산을 운용하며 대부분 무기는 협력 관계의 러시아에서 수입해온다.

 

북아프리카의 자원 강국 ‘알제리(Algeria)’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Algeria’는 수도명인 ‘Algiers(알제)’에서 유래가 되었다. ‘Algiers’는 아랍어 Jazāʾir Banī Mazghanna(Islands of the Mazghanna Tribe)’가 줄어서 된 ‘al-Jazāʾir(알 자자이르, 섬, 군도)’가 어원이다.

 

출처 미디어파인 (2020.2.20.)

http://www.mediaf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40

첨부파일
관련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이전글,다음글
이전글 [중동 여성들, 세상으로 나오다] ③ "한국, 교육·행정 협력으로 기회 찾아야"
다음글 다음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