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윤용수의 아랍기행] 2. '혼란과 다양성' 레바논 베이루트 2014-08-29

전쟁 위협 속에도 여유로운 일상 '두 얼굴의 도시'

▲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 시내를 여행하다 보면 전쟁으로 파괴된 건축물이 보수되지 않은 채 방치된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사진은 수 년째 흉물로 남아 있는, 상가로 추정되는 건축물. 비계에 걸려 있는 걸개 포스터 때문에 건축물이 더 을씨년스럽다.
윤용수 제공




지중해의 동쪽 끝에 위치한 레바논은 시리아,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른바 두 앙숙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작 그 속에 살고 있는 레바논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전쟁 징후가 엿보여도, 대탈출 행렬은 고사하고 식료품 사재기와 같은 사소한(?) 혼란도 목격하기 힘들다. 오히려 카페에서 만난 시민들은 시국보다 휴가에 대한 대화를 더 즐긴다.

이런 여유(?)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타고난 낙천성일까? 늘 주변을 돌아보며 바쁘게 살아온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역사상 가장 위대했다는 페니키아 상인들을 조상으로 둔 후손의 현실 감각과 계속되는 전쟁의 피로감이 역설적으로 지금의 혼란을 잉태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오랜 내전 탓 도시재건사업 '반쪽 복구' 그쳐
아름다운 건축물· 폐허공간 뒤섞인 부조화의 도시

이슬람·그리스·로마·비잔틴 문화유산 간직
갈등의 시기 넘어 곧 화합의 시대 올 것


■히잡과 비키니, 어울리지 않는 두 장면

레바논은 이처럼 두 얼굴의 나라다. 특히 수도인 베이루트는 더 그렇다. 흔히 아랍이라고 하면 히잡으로 온몸을 감싼 여인을 떠올린다. 베이루트에서도 이런 옷차림의 여성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아랍의 다른 도시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비키니 차림의 젊은 아가씨들이 대거 등장하는 미인대회도 베이루트에서는 구경할 수 있다. 아랍국가이자 이슬람국가이면서도 개방성 측면에서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여전히 테러에 시달리고 있는 이슬람국가임에도 베이루트 시내에서는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성(왼쪽)과 카페에서 자유롭게 대화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뿐 아니다. 짧은 미니스커트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들이 노천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즐기는 모습과,
개인 화기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경계를 서고 있는 장면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는 도시도 역시
베이루트다. 이를 두고 어떤 외국인은 '다양성'으로, 또다른 외국인은 '혼란'으로 묘사하는데, 어느 쪽도 틀린 것
같지 않다.


서구사회에서는 베이루트를 '중동의 파리'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중동 경제와 사회, 지식, 문화산업의 중심부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영혼 없는 도시'란 오명도 얻고 있다. 이는 도시 건축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도시 재건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른바 '반쪽 복구'에 그쳤기 때문이다. 즉, 1970년대 이후 계속된
내전으로 베이루트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됐다. 베이루트는 이에 따라 서방의 재정 지원을 받아 도시 재건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때 오스만 터키와 프랑스 식민 시대의 건축물이 상당수 복구됐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건물도 많았다. 복구된 도시와 그렇지 못한 도시가 뒤섞인 이른바 '부조화의 도시'로 전락했음에도 베이루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전쟁과 테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베이루트는 여전히 중동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다. 아랍 세계는 물론이고 서양에서 온 관광객들도 이곳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이유가 신석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오스만 터키 등 지중해 주요
문명의 흔적을 베이루트에서 보고 느낄 수 있다. 물론 사업차 찾아온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 매장도 이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슬람사원과 교회 양립 '편견' 사라져

그러나 레바논 여행의 최대 매력인 '혼란과 다양성'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싶다면 베이루트 시내에 위치한 나즈마(Najmah)광장의 시계탑 아래로 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유럽의 자유와 아랍의 절제, 문화의 융성과 전쟁의 피폐가 한눈에 목격된다. 거대한 이슬람사원과 교회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갈등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 이방인의 편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베이루트는 한 국가의 수도이지만 걸어서 반나절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그러나 이 작은 도시에서 자연의 축복, 인간의 창조적 의지, 탐욕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베이루트 여행은 묘미가 있다.



베이루트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비둘기바위'. 윤용수 제공


참, 베이루트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비둘기바위'도 시내에서 멀지 않다. 생김새로 봐서는 비둘기가 아니라 개선문처럼 보이는데, 아무튼 베이루트 사람들은 비둘기바위 주변의 해변과 갯바위에서 수영과 낚시를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다.



베이루트는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많이 가졌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가 공존하며 빚어낸 번영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지금 당장은 갈등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곧
화합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혹, 그 갈등이 극복되지 못한다면, 이는 베이루트뿐 아니라 인류 모두의 불행일 수도 있다.

 

TIP

레바논은 작은 나라다. 국토가 1만 400㎢로 경상남도(1만 530㎢)와 비슷하다. 그러니 전국을 다 돌아다녀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날씨는 중동국가임에도 기후대가 다양하다. 수도인 베이루트에서는 겨울에 스키를 탈 수 있다.

항공편은 한국∼레바논 직항이 없다. 두바이, 도하, 이스탄불 등을 경유하는 외국 항공사를 이용해야 한다.
비자는 관광 목적일 경우 30일 동안 체류가 허용된다. 이때 비자는 공항에서 받는다.


여행자 숙소는 베이루트에 몰려 있다. 최고급 호텔은 물론이고 배낭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호스텔도 많다.
대중교통 수단은 택시가 일반적이며, 승차하기 전에 택시기사와 목적지까지의 요금에 대한 흥정이 꼭 필요
하다. 인터넷 사정은 좋은 편이나, 공공장소에서의 와이파이 사용은 다소 제한적이다.


레바논의 대표적인 여행지는 베이루트이다. 그러나 페니키아 문자가 유럽으로 건너간 비블루스, 대문호인
칼릴 지브란이 안치된 베카계곡 등도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이스라엘과의 접경인 남부지역은
오랜 분쟁지로 여행이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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