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윤용수의 아랍기행] 3. 누구에게나 친절한 도시 '암만' 2014-09-04

▲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 구시가지에 있는 로마 원형극장.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보존이 잘 됐다. 원형극장
안에 벤치가 놓여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시민공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윤용수 제공

요르단은 아라비아반도의 북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부존 자원도, 인구도 작은 저개발국가이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특별한 의미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요르단 하심 왕가는 이슬람교의 교조인 무함마드의 직계 가문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슬람교의 종가다. 이러한 종가의 자부심과 역사적, 문화적 자부심이 요르단인의
의식 속에 남아 그들의 자존심과 긍지로 표현된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요르단 친구가 있었다. 그에게 미국으로 이민 간 요르단인들이 생계 수단으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평소의 온화한 미소를 잃은 채 정색하면서 "요르단 사람이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요르단인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봄에는 들꽃, 겨울에는 눈까지 내려
이라크 복구 개발 붐 전 세계가 주목
고층빌딩 늘며 서구 도시 탈바꿈 중
대부분 무슬림… 타 종교에도 관대


그 요르단의 중심부에 암만이 있다. 요르단의 수도이다. 암만은 7개의 언덕 위에 건설된 도시로 해발 850m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고지대인 탓에 열사의 중동에서도 사람이 거주하기에 비교적 쾌적하다고 한다. 봄인
3∼4월에는 광야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이름 모를 들꽃이 지천에 피어난다. 이 무렵이면 이곳이 과연 중동일까, 하는 의문까지 든다.


물론 여름에는 40도 가까이 온도가 치솟는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심지어 밤에는 긴
소매의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서늘하다. 이런 환경 때문에 암만에는 걸프지역의 부유한 사람들이 가족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한여름을 보내기도 한다.


눈 내리는 겨울의 암만.
암만은 중동에서는 드물게 겨울에 비와 눈이 내린다. 심지어 폭설로 휴교령이 내려진 적도 있었다. 중동의 더운 날씨만을 생각하고 11∼2월 중 가벼운 옷차림으로 암만을 방문했다면 낭패를 본다. 사막과 낙타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암만은 분명히 다른 도시다.

암만은 요르단의 정치, 경제뿐 아니라 교통, 통신, 의학, 관광, 교육, 투자의 중심 도시다. 전 세계 투자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이라크 복구사업도 암만을 경유지로 삼고 있다.

이라크 전쟁 난민들이 요르단에 대거 정착하면서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이들을 위한 국제단체의
경제적 지원과 외국자본의 유입은 요르단 경제를 떠받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덕분에 최근 암만에는 건설 붐이 일고 있으며, 은행과 금융 산업은 요르단 경제 발전의 자양분을 쉼 없이 공급하고 있다.

암만 신시가지의 변화 속도는 2∼3년마다 이곳을 찾는 필자에게도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암만 신시가지의
스카이라인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으며, 현대식 고급 호텔과 대형 백화점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서고 있다.

웅장한 고가도로와 지하도로, 다른 아랍 도시의 여성들에 비해 개방적인 옷차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간혹
보이던 생맥줏집이 거리 곳곳에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모습 등은 전통적인 이슬람 도시에서 화려한 서구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암만의 새로운 변화로 느껴진다. 이런 변화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의 요르단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요르단은 더 이상 이슬람 국가가 아니다"라며 탄식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암만의 구시가지는 여전히 전형적인 이슬람 도시 풍경을 유지하고 있다. 시내 중심가의 이슬람사원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상가들, 사원 안에서 '꾸란'(코란)을 읽고 있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복잡한 거리,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를 여유롭게 가로지르는 사람들, 한가롭게 길거리 카페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아랍 도시의 모습이다.

요르단의 하늘 관문인 알리야 공항을 통해 암만에 도착하면 다른 아랍 국가의 도시들과 달리 공항이 잘 조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랍 국가의 공항에서 으례적으로 겪는 택시 호객꾼의 환영 행사(?)도 암만에서는 즐길 수 없다. 오히려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와 목적지까지의 요금을 미리 알려주는 친절은 낮선 도시를 찾은
이방인의 걱정과 우려를 한꺼번에 씻어 준다.

여기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의 대부분이 한국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곳은 더 이상 낯선 지역이 아니다. 암만으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로부터 "자기 집에는 아내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산"이라는 말도 종종 듣는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요르단 최고 대학인 요르단대학에서는 한국어과를 일찌감치 개설했다. 많은 요르단인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좋아하며, 이를 점점 더 직접 접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암만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해 노선버스를 탔다. 좁고 복잡한 20인승 버스임에도 손님(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자진해서 자리를 양보하는 이들의 배려에 괜히 눈물이 났다. 일정한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버스인데도, 짐이 많은 할머니를 위해 노선을 벗어나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 버스 기사의 친절(?)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길가 노점상에서 버스 기사가 과일을 사기 위해 잠시 차를 세워도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였다면 당장 난리가 났을 것이다. 다들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기에 그들 스스로 배려하는 사회적 합의라고 스스로 정리해 보았다.

암만은 인구의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자유로운 신앙 생활도 가능한 곳이다. 요르단의 대표적인 사원인
킹 후세인 사원의 둥근 첨탑과 나란히 서 있는 가톨릭 성당의 십자가에서 요르단이 보여 주는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우회적으로 엿볼 수 있다. 
마다바의 모세기념교회 상징물인 모세의 지팡이.
지난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종교간 화합을 위해 암만을 방문했을 때 비가 내리자 뉴스 앵커는
"이 비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라는 멘트로 교황을 환영했다. 암만 시내 종합운동장에서 교황이 대규모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을 생중계한 것은 교황의 종교간 화해 메시지에 대한 요르단의 응답이기도 했다.

헌법에서 국교를 이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타 종교와 문화에 관대한 나라가
요르단이다. 다양한 문화와 문명이 요르단의 역사와 문화의 지층을 형성하고 있기에 공존과 공영의 지혜를
일찍부터 깨우친 듯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도시, 기독교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도시, 작고 조용하지만 오랜 역사를 통한 저력과 단아함을 갖추고 있는 도시가 이방인의 눈에 비친 암만이다.


출처 : 부산일보 (2014년 9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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