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윤용수의 아랍기행] 4. 시리아 다마스쿠스 2014-09-15
시리아는 최근 심각한 내전을 겪으면서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 수도가 다마스쿠스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는 단순히 시리아의 수도에 그치지 않는다. 아랍과 이슬람 역사에서 이곳은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역사·문명적 중요성을 가진 도시로 부각되고 있다. 일개 부족 연합체였던 아랍·이슬람 공동체가 근대적 의미의 첫 국가로 발전한 우마이야 왕국(660~750)의 수도도 지금의 다마스쿠스였기 때문이다. 이 왕국은 동·서로마의 분열과 페르시아 제국의 쇠락으로 무주공산이 된 지중해에서 새로운 패권자로 등장한 아랍·이슬람 세력의 새
시대를 알리는 서곡이기도 했다.


일찍부터 '동양의 진주'라 불린 시리아는 북쪽 터키 고원과 남쪽 아라비아 반도의 완충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동서남북을 잇는 육상과 해상의 교통 요충지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로 인해 이방인이 이곳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 버금가는 고도(古都)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회색빛
건물부터 곳곳에 두껍게 쌓인 먼지에서 이 도시의 오랜 역사를 시나브로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웬만한 건물은 500년이 넘었고, 그럼에도 이들 건물은 주택, 식당 등으로 일상 속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우마이야 이슬람 사원에 세례 요한 유해 안치
도시 곳곳에 기독교 유적 '복합 종교 도시'
'아랍 영웅' 살라딘 무덤 참배객 줄이어
카시온 산에서 내려다 본 도시 풍경 '장관'
발길마다 유적,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그중 한 식당을 찾았다. 상당히 오래된 건물 같아서 "언제 건립됐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800년 전에 지은 개인 주택"이라고 답했다. 그때의 놀라움이란. 그 식당은 더운 날씨와 지열을 피하기 위해
거주 공간을 일부러 지하에 마련해 두었다. 거실과 침실, 주방, 화장실, 창고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시설이 지하에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식당이 아니라 생활사박물관이다.


다마스쿠스 시내 풍경.
역사문화도시로서 다마스쿠스의 진면목은 역시 구시가지에서 더 쉽게 발견된다. 로마 성벽에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전통적인 이슬람 도시 구조를 지녔다. 그 중심에 우마이야 사원이 있다. 이 사원도 지금으로부터
1천309년 전인 705년 세워졌다. 당시 칼리파였던 알 왈리드 이븐 압둘 말리크의 명에 의해서다.


기독교 성인인 세례 요한이 안치된 우마이야 이슬람 사원 내부.
우마이야 사원은 시리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다. 예루살렘의 '바위 돔 사원'과 함께 아랍 건축물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우마이야 사원의 3개 첨탑은 아유비 왕조와 맘룩 왕조, 오스만 터키
시대에 각각 보수돼 서로 다른 형태와 양식을 보여줘 건축학자들의 주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우마이야
사원은 규모뿐 아니라 사원 안팎에 장식된 모자이크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아랍 모자이크 예술의 백미인 것이다.


이 사원은 현재 이슬람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남아 있지만, 처음부터 이슬람 사원은 아니었다. 이 사원이 서 있는 자리는 원래 고대 시리아의 최고신인 하다드를 모신 신전이 있었는데, 로마시대에 로마인을 위한 주피터 신전이 세워졌고, 기독교 시대인 비잔틴 제국 때에는 세례 요한 교회가 건립됐다. 바로 이 교회를 이슬람 시대에 와서
우마이야 왕조가 지금의 우마이야 사원으로 바꾼 것이다.


이 사원에는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전한다. 헤롯 안티파스 왕에게 참수된 세례 요한의 머리가 이 사원 안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당시 교회가 우마이야 사원으로 바뀐 뒤에도 세례 요한의 무덤을 옮기지 않았기
때문으로, 이슬람 사원의 중앙에 기독교 성자의 유해가 안치되는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대립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21세기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관계에서 이 같은 일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적과의 동침'이 된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일 수 있다. 사실 이슬람에서는 기독교 성자를
하나님의 사도로 인정하는 전통이 있다. 이 전통을 이해하면 우마이야 사원의 세례 요한 유해가 결코 이상하게
여겨질 수 없다. 오히려 21세기 양대 갈등의 축인 이슬람과 기독교의 화해와 공존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옳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하미디야 시장.
사원 입구는 아랍세계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하미디야 시장과 연결돼 있다. 신앙 장소인 사원과 삶의 공간인
시장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극히 이슬람적인 사고다. 이곳은 은 세공품, 양탄자 등을 사러 오는 아랍
상인과 관광객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중세부터 각종 공예품의 제작·판매지역으로 명성을 알렸기 때문이다.


하미디야 시장 바로 옆에는 십자군의 침략을 막아 낸 불세출의 아랍 영웅, 살라딘의 무덤이 있어 그를 참배하려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사원에도 그의 죽음을 기린 관이 두 개 있다. 그런데 왜 두 개일까? 하나는 그의 주검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독일이 제작해 보낸 가짜 관이라고 한다. 십자군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유럽 국가가 살라딘의 관을 선물했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시리아는 한국과 국교를 맺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한국 기업이 들어와 있을 정도로 경제적 교류는
매우 활발하다. 시리아 국민들도 한국제품은 물론이고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다. 한글로 '00학원'이라고 적힌 중고 자동차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시리아인은 자존감이 강하다. 특히 서구사회에 대해 더 그렇다. 그 자존심은 때때로 배척으로도 연결되는데,
곳곳에서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콜라다. 코카콜라는 유태인이 운영하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시리아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됐다. 시리아에서 콜라를 마시고 싶다면 '펩시'라고 해야 할 정도다.


카시온 산에 올랐다. 다마스쿠스의 웅장하고 고색찬연한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다. 이곳에 오르면
다마스쿠스가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마스쿠스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의
수도이지만, 비잔틴 제국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이 때문에 도시 곳곳에서 기독교 유적을 찾을 수 있다. 이른바
복합 종교 도시인 것이다. 다마스쿠스는 '교회의 핍박자' 바울이,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로 다시 태어난 성지이기도 하다. 기독교 역사의 한 쪽을 담당하고 있어, 요즘도 전 세계
기독교도인들이 즐겨찾는 순례지다.


오늘날 다마스쿠스는 수천 년에 걸친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서의 모습과, 서구 사회의
현대적인 도시 기능을 동시에 갖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초고층 건물과 현대식 호텔, 대중화된 휴대전화, 이른 아침부터 출근을 서두르는 시민, 길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와 경적 소리 등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이다.


시리아는 3년째 내전을 치르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가 많이 피폐해졌다. 인류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다마스쿠스의 소중한 유적과 유물이 몇몇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에 소실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출처 : 부산일보 (2014년 9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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