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올리브 나무 사이로 아랍 명문 킹스 아카데미 2015-05-19
 
 ▲ 아랍의 명문 요르단 킹스 아카데미    
 


여정의 마무리는 암만을 돌아보는 것으로 잡았다. 아무리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역사적 유적이 화려하다 해도
현재 사람이 숨 쉬며 사는 공간만큼 가치 있는 여행지는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람들의 풍경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겉만 훑고 다니는 관광이 아닌, 가능하면 몸으로 체험하거나 깊이 관찰하려고 하는 것이다. 암만은 사람으로 북적된다. 요르단 인구 625만 중 210만이 수도인 암만에서 산다. 하긴 대부분
사막이라서 사람 살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이 나라의 북부이자, 사막이 아닌 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암만은 자발(Zabal)이라고 부르는 7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해발 1,000m의 고원이라서 겨울에는 춥고 눈도 내린다. 그러나 여름에는 아랍의 열사에 비해 서늘한 편이라고 한다. 성경에 의하면 암만은 랍바암몬이라
불렸는데 B.C. 1,200년 경 암몬족의 수도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다윗왕은 얼굴이 예뻤던 유부녀
밧세바를 취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 우리아는 자신의 충복이었다. 여인을 취하기 위한 욕심에 충성스런 수족 우리아를 전쟁이 한창이던 랍바암몬의 최전선으로 내 몰아 죽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삼국사기>에 나오는 도미 아내 이야기와 아주 흡사하다. 그런 군주의 말로는 폐망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지금도 지속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적
충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나 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천하가 된다. 종교보다 군사적인 영향력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빌어 이슬람은 매우 호전적이라 할지 모른다. 거기에 오늘날 악명을 떨치는 IS까지 있으니 더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 무슬림은 평화를 지향한다. 이슬람 제국은 정복한 지역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큰 저항 없이 거대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질적인 문화와 공존의 길을 택함으로써 저항을 줄였고, 이러한 관용은 피정복자들이 스스로 개종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광대한 영역에 거쳐 그 힘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시무시한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십자군전쟁에서 이슬람에 패배하자 위기감을 느낀 세력들이 조작해낸 말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이슬람에 적개심을 품게 해서 저항하게
만들려는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적 관점이 작용한 것이다.

   
  ▲ 요르단 왕실의 올리브농장이었음을 보여주는 고목의 올리브나무들  
 



암만의 첫 방문지는 중동의 명문 요르단 킹스 아카데미(King's Academy)이다. 이 학교를 방문지로 정한 것은
요르단의 교육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랍권에서 인재를 가장 중시하고,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나라가 바로 요르단이기 때문이다. 킹스 아카데미는 올해 졸업한 이조형 소장의 딸 유림이가 다녔고, 아들인
재원이가 지금 재학 중인 학교라서 접근도 용이했다. 그러나 그 이유 때문에 이 학교를 찾은 것은 아니다. 킹스
아카데미는 아랍권 학생들에게는 꿈의 학교이다. 압둘라 국왕이 직접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자긍심이 대단하다.


압둘라 국왕이 미국 명문 보딩 스쿨 디어필드(Deerfild Academy)를 졸업하였다. 왕위를 승계한 후 요르단의
발전을 위해서 인재 양성이 필요함을 느낀 국왕은 왕실 올리브 농장에 특별한 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교인 디어필드의 교육 시스템을 옮겨왔다. 시스템만이 아니라 그곳의 교사들까지 초빙해 온 것이다.
여기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중동의 부호들에게 기부까지 받았다. 요르단 왕실의 의지와
중동 부호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학교가 문을 연 것이다.


학교에 들어서자 이제까지 보아온 요르단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름드리 올리브 나무가 있어서 좀
다르지만, 십여 년 전 미국 동부지역 명문학교들을 돌아볼 때와 비슷했다. 건물 배치는 관리동과 교사(校舍),
그리고 기숙사로 나눠 있다. 가운데에 있는 도서관이 제일 궁금했다. 사서교사에게 도서관을 둘러보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한다. 빽빽한 서가들이 중앙에 있고, 양쪽으로 작은 방들이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이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행정을 맡는 직원들 외에 가르치는 교원들은 미국인이 많다.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 교장을 영입하고
교사진들도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브라운, 코넬 등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 학교에
한국 학생 27명이 다니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 학생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미국의 아이리비그로 진학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이 학교에 압둘라 국왕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는 몇 가지 사례로 알 수 있다. 먼저 국왕의 해외순방 때
학생들 몇 명을 선발하여 동행한다. 그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이다. 또 한 달에 두 번씩 헬기를 타고 와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돌아간다. 이 강연에는 국왕의 특별한 학생 사랑이 담겨 있다고 한다.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 등 글로벌 시대에 어떻게 준비해 하는지에 대해 역설한다. 리더를 기르기 위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졸업식에 왕비와 함께 참석해 모든 졸업생들에게 직접 증서를 수여하는 것 역시 거르지 않는 의식이다.


   
  ▲ 킹스 아카데미 도서관 내부  
 



이 학교 학부모이기도 한 노인숙 선생님은 킹스의 장점으로 교사와 학생이 같은 구역 안에 생활하는 점을 들었다. 교사들의 생활관은 가족과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시설인데, 언제든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질문을 하거나 상담을 원할 때 기꺼이 응한다고 한다. 그러니 따로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 교사진 수준도 높고, 개방된 사고로
학생들에게 열정을 쏟는 점도 믿음이 간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수 정예라서 입학이 어렵고, 학비가 너무 비싸다. 각종 감면제도나 장학 제도가 있지만 보통 가정의 학생들에게는 아무래도 그림의 떡이다.


우뚝 솟은 시계탑 위로 노을이 물들어 간다. 코발트빛 건물 지붕에 어리는 노을은 그렇잖아도 아름다운 이 학교를 더 빛나게 한다. 드넓은 캠퍼스에 아름다운 건물들, 그리고 공부하기에 최적의 시설과 환경 ……. 이 학교가
부럽고, 특별한 이유이다. 사막의 척박한 땅에 올리브 나무는 생명수로 불린다.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왕실의 올리브 농장에 세워진 이 학교가 요르단을 살리려는 생명의 학교로 위상을 갖추려면 보통의 학생들에게도 문이 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새전북신문 (2015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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