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이슬람의 콘스탄티노플 정복, 서구와 대결서 승리의 정점 2015-09-02
1453콘스탄티노플공성전1


지난 1,400년간 서구와 이슬람 세계의 관계사는 갈등과 전쟁의 연속이었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쪽은 이슬람
이었고, 유럽이 암흑의 시기를 살고 있던 중세 1,000년은 이슬람이 거의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시기였다. 군사적
승리에 그치지 않고 문명이 야만을 일깨우고, 앞선 기술과 삶의 방식을 전해주어 오늘의 유럽을 가능케 해 준
바탕이 이슬람 세계라는 사실을 이슬람인들은 자랑스럽게 여겼다. 인류역사를 조망하는 관점과 교육방식에서도 많은 차이가 난다. 그들의 역사인식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등 인류 3대 고대문명이 모두 중동에서 발아되었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3대 일신교가 모두 이곳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집트와
오리엔트 문명을 받아 그리스-로마 문명이 유럽으로 가지를 치고 나갔지만, 중동에서는 오늘날까지 한치의 단절 없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류 5,000년 역사 중에서 적어도 4,800년을 주도해 온 ‘중양(中洋)’이란 개념으로 접근한다. 그러한 단단한 지식체계와 인문적 하부구조를 토양으로 등장한
이슬람이 세계문명에 기여하고 서구를 계도할 수 있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동서양 구도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런데 최근 300여년 동안은 이슬람 세계가 거꾸로 서구의 가혹한 식민지 지배에 시달렸다. 강해진 서구를 인정하고 약자로 뒤바뀐 자신들의 입장을 수긍하기에는 과거의 영광이 너무나 화려하다. 그래서 그들 일부는 이슬람원리주의자나 혹은 급진적 테러리스트가 되어 패배감이 팽배한 현실에 저항하면서 서구에 온 몸으로 맞서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서구의 바이러스를 몰아내고 코란과 이슬람의 가치를 되찾는 것만이 이슬람 세계가 살 길
이라고 맹신하는 것이다.



1863비엔나공성전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 양대국을 무너뜨린 신생 아랍

메카라는 사막 불모지에서 발아된 이슬람은 640년경 북진해 당시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라는 두 강대국을
동시에 무너뜨린다. 세계 전쟁사 최대의 미스터리다. 두 제국은 300년간의 기나긴 전쟁으로 이미 지쳐있었고,
수탈과 약탈경제에 시달린 피지배 주민들은 새로운 정치체제의 출현을 절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아랍의
우마이야 왕조는 동로마 제국의 아시아 수도였던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정하고 674~678 1차 콘스탄티노플 공격에 나선 이후 717~718년에는 육해군 주력부대를 총동원하여 2차 공방전을 벌였다. 난공불락의 3중 성벽 덕택으로 살아남은 콘스탄티노플은 그 후 800년간 더 존속할 수 있었지만, 이슬람 역사가들은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후손들의 신성한 의무로 규정했다.


한편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한 이슬람은 파죽지세로 지브롤터를 건너 피레네 산맥을 넘어갔다. 732년 파리공격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유럽전체는 공포와 경악에 사로잡혔고 급기야 프랑크 군주 샤를르 마르텔이 주도하는 유럽 연합국이 결성되어 5만 이슬람군의 북상을 막았다. 스스로 흩어져 갈등하던 유럽세계는 이를 계기로 이슬람에 맞선 서구 기독교 문화의 집합체로서 오늘날 유럽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이 강화되는 소중한 선물을 얻게
되었다. 벨기에 역사학자 앙리 피렌느는 이슬람의 발흥이 없었다면 서유럽의 탄생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리 교외에서 격돌한 투르와 프와티에 전투에서 유럽은 정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이슬람에게는 유럽이 이슬람화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 됐다. 독일 전쟁사학자 한스 델브뤼크는 유럽 기독교세계를 지켜낸 프와티에 전투를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이라 평가했으며, 후일 유럽 전쟁문학의 주된 소재가 되면서 니벨룽겐의 이야기나 동키호테 같은 문학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편 중세 이슬람학자들인 이븐 이드하리 알 마라케쉬나 칼리드 야흐야 같은 학자는 이 전투의 패배를 유럽 이슬람화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우마이야 왕조 패망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유럽으로 진출이 막히면서 이질적인 집단들의 불만이 급증하면서 740년경 베르베르족들의 대규모 반란에 이어 750년 왕조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관계사와 상호영향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라면 의심의 여지없이 십자군 전쟁일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슬람 역사에서 십자군에 대한 아픈 기억은 크지 않다. 이슬람 세계가 받은 충격과
트라우마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유럽 사회끼리의 약탈과 살육이 중심이 된 십자군 전쟁을 통해 오히려 유럽이
앞선 이슬람 문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슬람 역사상 서구와의 대결에서 가장 환희에 찬 순간이라면 단연 1453년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일 것이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함락

몽골에 의해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1258년 압바스 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슬람 세계를 다시 일으킨 제국은 오스만이었다. 특히 1453년 5월 29일 비잔틴 제국의 천년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이슬람의 도시’ 이스탄불이 새로이 탄생되면서 이슬람인들은 승리의 정점을 만끽했다.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는 자가 진정한 이슬람세계의 통치자가 되리라’는 이슬람의 오랜 전승을 굳게 믿고 있던 21살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오랜 기간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결행한다. 육해군 전면전과 당시 최첨단 무기였던 우르반 대포를 동원하여 54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를 쟁취한다. 메흐메트 2세에게는 정복자요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의미의 ‘파티’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메흐메트 2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이슬람 세계의 자부심이고 자긍심의 표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의 역사는 얼마 가지 못했다. 1492년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라 여왕에 의해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가 다시 함락되고,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도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레판토 해전은 이슬람 제국 쇠퇴의 불길한 전조가 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과 교황령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신성 동맹의 연합함대가 오스만 제국의 2만5,000 군대와 갤리선 함대를 패퇴시킨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제해권은 다시 유럽으로 넘어갔고 오스만 제국의 팽창에 심각한 균열이 보이는 기점이 됐으나, 자만심에 가득한 이스탄불 조정이
이를 알아채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레판토 해전이 유럽이 이슬람을 꺾게 되는 전환점의 사건으로 유럽역사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이슬람 역사에서는 그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 1683년 비엔나 공성전투도
마찬가지였다. 1529년, 술탄 쉴레이만 1세가 지휘하는 오스만 정예군이 합스부르그가의 심장부인 비엔나 점령에 실패한 이후, 1683년 전쟁에서도 패배했지만 오스만 왕정은 지난 1,000년의 승리에 취해 우월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터키군인들이 급히 도망가면서 버리고 간 커피원두를 수거해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어 만든 ‘비엔나 커피’가 유행하고, 터키군대의 대포를 녹여 비엔나 스테판 성당의 23개 종을 주조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결과 이슬람 세계는 1세기 정도의 형식상 냉전시기를 거친 이후 하나 하나 유럽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1798년 오스만 제국의 영향하에 있던 이집트가 프랑스에 넘어감으로써 오스만 제국의 약화는 가속화되었다.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만 제국은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동맹국에 가담해 패전국이 됨으로서 600년 이슬람 대제국의 화려한 시대를 마감했다. 발칸반도는 산산조각이 나고 하나의 민족-종교-언어공동체였던
아랍은 22개 개별국가로 쪼개졌다.


1,000년간 지배했던 모든 이슬람 세계가 오히려 가혹한 서구 식민지를 경험함으로써 이슬람 세계와 서구가 갖는 1,400년간의 기나긴 반목과 갈등, 설상가상으로 팔레스타인 점령지 반환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아랍의 극한투쟁이 오늘날 중동 문제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런 유럽과 이슬람 세계간에 펼쳐졌던 1,000년이 넘는 전쟁과 갈등의 역사, 서로 상이한 역사인식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중동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 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ㆍ중동학



출처 : 한국일보 (2015년 0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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