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윤용수의 아랍기행] 1. 프롤로그 아랍, 중세 유럽 암흑기에도 '문명의 횃불' 밝혔다 2014-08-22
▲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우마위야 사원. 이슬람 세계 3대 성지 중 하나로, 기독교 성인인 세례 요한이 안치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슬람교는 기독교를 수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실이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윤용수 제공
'아랍'은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로 연상될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아랍인의 이미지는 극히 단편적이고 부정적이었다. 석유, 사막, 모래, 일부다처, 테러 등의 단발적인 단어가 전부였고 이들 단어를 연결시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고리는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인식을 갖는 데에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가 한몫했다. 미국인은 정의로운 영웅이고 아랍인은 여자 어린이에게도 총을 겨누는, 잔혹한 인물로 종종 묘사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도 다르지 않았다. 서구사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내용을 부각시킨 반면에 아랍사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그렸다. 서구 언론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랍어와 아랍문화, 아랍정치 등을 배우는 대학생들은 어떨까. 아랍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을 것 같은데도 인터뷰를 해본 결과는 크게 달랐다. 아랍어과를 선택한 이유가 아랍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성적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대목에서는 오히려 씁쓸한 마음까지 생겼다. 아랍에 대한 인식도 일반인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아랍은 무지와 폭력의 사회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아랍 전문가가 되고 싶어 아랍어과를 지원했다"고 지원 계기를 당당히 밝히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전공이 다른 데도 아랍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려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아랍과 관련된 교양서적과 대중강연이 크게 늘어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유럽이나 미국, 남미에 이어 아랍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요 여행지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것도 아랍에 대한 인식을 바꾼 계기가 되고 있다.


서구 언론·영화 탓 폭력적 이미지로 왜곡
요구르트·맥주 처음 만든 이도 아랍인
소주도 아랍서 유래…인연 오래된 가까운 친구


상황이 이러니 필자도 아랍에 대한 대중 강연을 준비할 때 더 철저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강의 도중 싸늘한 시선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런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아랍에 대한 관심은 반갑다. 다시 언급하지만 아랍은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것처럼 무지와 폭력의 사회가 아니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과 철학으로 인류 문명을 선도해 왔으며, 중세 유럽이 오랫동안
문명의 암흑기에 놓였을 때 그 문명의 횃불을 지켜냈다. 요구르트와 맥주를 최초로 만든 이가 아랍인이며,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이 음력을 만들 때 달의 주기 계산을 자문한 사람들이 역시 아랍인이었다. 한국인이 요즘 가장 많이 즐기는 술이 소주라고 할 때, 바로 그 소주가 고대 아랍인이 즐긴 '아락'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거의 비사에
가깝다.

아랍인은 이처럼 아주 먼 이웃이 아니다. 어쩌면 서구인보다 훨씬 먼저 우리와 교류했고, 문화적 공감대를
이뤘는지도 모른다. 이런 아랍인은 우리의 시조에 버금가는 시문학을 오래 전부터 향유했고, '아랍의 시와 서구의 우주선을 바꾸지 않겠다'며 지적 자긍심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시각과 후각, 미각 이어 촉각까지


아랍의 도시에 대해서도 혹자는 사막에 아무렇게나 세운 것으로 오해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사막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최선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 냈고, 그런 사고와 삶의 지혜가 반영된 것이 지금의
아랍 도시다. 즉,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체계와 질서가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삶의 중심인 이슬람 사원이 중심에 서고, 그 주변으로 삶의 또다른 공간인 시장이 들어서고, 거주지는 그 시장을 에워싸는, 이른바 동심형 구조가 일찍부터 발달한 것이다.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들리는 직경 거리가 한 도시의 공간적 단위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서양식 모자와 옷이 아무리 실용적이라고 해도 거친 모래 바람이 상시적으로 부는 사막에서는 무용지물이듯이 사막에는 사막만의 최적화된 문화가 존재한다. 아랍인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감싸는 전통 복장을 갖춘 것도 그런 삶의 지혜에서 비롯됐다. 그 삶을 우리는 존중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도 그들로부터
존중 받는 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시각과 후각, 미각으로 음식을 즐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랍인은 여기에 촉각을 하나 더하고
있다. 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미개하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문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비문화인'임에 틀림없다.


■한국인 무슬림만 무려 4만 명 시대


우리에게 아랍인은 더 이상 이상한 세계의 사람들이 아니다. 수많은 한국 기업이 아랍사회로 진출하고 있고, 우리 주변에서 아랍인을 만나는 것도 낯설지 않다. 아랍 문화에 동화된 한국인이 적지 않고, 그들 중 종교까지 이슬람으로 바꾼 이도 많다. 한국이슬람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무슬림은 이미 4만 명을 넘어섰다.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수치이고, 그 수치는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대도시라면 으레 이슬람 식당 한둘은 찾을 수 있고, 심지어 히잡을 쓴 한국 여성, 무슬림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한국인도 간혹 만날 수 있다. 이슬람 음식인 '할랄 푸드'는 국내에서 이미 인기 있는 웰빙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다. 그만큼 아랍사회와의 교류가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교류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다.
다문화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인, 일본인은 물론이고 동남아인, 서남아인,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도 결혼이나 이민, 취업 등을 계기로 우리의 이웃이 되고 있다. 피부 색깔은 물론이고, 종교와 신념이 다른 사람들과도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자 삶의 지혜가 되고 있다.

아랍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다문화 사회를 구축해 왔다.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 왔다. 어떤 상황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또 어떤 상황에서 다문화를 기반으로 성숙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일상에서 겪어 왔다는 것이다.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우리는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 대가로 사람 사는 냄새와 따뜻한 인정을 잃어버렸다. 그 잃어버린 세계를 어쩌면 이 시리즈를 통해 환기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발끈을 동여 매고 아랍인의 삶 속으로 느긋하게 들어가 본다.


쿠웨이트에서 바라본 걸프만의 일몰.

아랍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도하는 이슬람교도.

이집트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대학본부 건물. 세계 두 번째로 설립된 대학이며, 이슬람교의 중심 사원 역할도 하고 있다.
대학 졸업식 때 검은색 아카데미 가운을 입는 전통이 바로 이곳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출처 : 부산일보 (2014/08/21 일자)
첨부파일
관련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이전글,다음글
이전글 무슬림의 땅 '아랍', 문화 코드 알아야 시장이 열린다
다음글 미국·멕시코·모로코·전주시립합창단 한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