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윤용수의 아랍기행] 6. 이집트 카이로 2014-10-02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는 아랍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다. 인구가 현재 700만 명에 이르고 역사도 가장 오래됐다. 파라오 문명의 발상지이자 람세스의 영광을 품어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카이로의
아즈하르대학의 경우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으로 유명하며, 아랍지역에서 지하철이 운행되는 곳도
카이로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행자들이 여행하기에 가장 힘든 도시로 이곳을 꼽으니 참으로 특이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박시시'로 시작되는 도시 여행
 

그 이유는 카이로에 도착하면 곧바로 깨닫게 된다. 카이로 공항을 빠져나오면 수많은 택시 호객꾼들이 먼저
환영한다. 어떤 호객꾼은 여행 가방을 거의 강제로 빼앗을 정도로 완력도 부린다. 혹, 친절한 사람을 만났다면
차라리 의심부터 하는 게 낫다.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 택시에 가방을 실어 주고는 "박시시"를 요구할 것이다. 불어로 팁이나 뇌물을 뜻하는 '박시시(bakchich)'는 이곳에서 기부금 정도로 해석된다.


파라오 문명의 발상지이자 세계적 관광지  
가는 곳마다 관광객 '잿밥' 노리는 호객꾼 천지  
구시가지엔 수녀원·유대교 예배당·이슬람사원 공존  
시위 몸살 타흐리르 광장… 멀고 먼 '카이로의 봄'
 


택시기사와의 요금 흥정도 일상적이다. 똑같은 거리인데도 기사마다 요구하는 액수가 다르다. 혹, 목적지가 고급 호텔이라면 터무니없는 요금을 청구 받기도 한다. 고급 호텔을 이용할 정도로 형편이 넉넉하니 택시비를 더
지불하라는 주장이다. 이쯤되면 부의 재분배(?)에 대한 이들만의 특이한 의식구조에 경의를 표시해야 한다. 


'박시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관광지는 물론이고 일반 공원에서도 이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집트를 처음 방문해 피라미드 내부를 돌아 볼 때였다.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정복을 입은 피라미드
관리인이 "잘 보았느냐?"고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니 그는 느닷없이 박시시를 요구했다. 하도 기가
막혀 "왜?"라고 물으니 그는 "잘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시쳇말로 '헐~'이다. 


■그들만의 다툼 해결법에 감탄 
낙타를 탄 베드윈 족과 가자의 피라미드.
카이로 거리는 아랍 도시 특유의 활기는 물론이고 자동차 경적, 매연으로 늘 넘쳐난다. 어느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최고급 자동차인 벤츠와 당나귀가 나란히 지나가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헤집고 다닌다. 이방인의 눈에는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일상의 풍경이다. 그럼에도 좀처럼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름의 질서와 요령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하루는 필자가 탄 택시가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두 기사간의 언쟁이 있었지만 그 다음 상황이 달랐다.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에워쌌고 사고 경위와 과정을 청취했다. 그리고 잘잘못을 가려 주었다. 이에 대해 사고 당사자들도 수긍했다.
이른바 인민재판 같은 것이었다. 경찰이 개입할 틈도 없었다. 자체적으로 합의됐고 두 사람이 악수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됐다. 택시로 돌아온 기사에게 "잘 해결됐느냐?"고 물으니 그는 능청스럽게 답했다. "예, 잘 됐어요." 정말 헐∼이다. 


■어디를 가도 "웰컴 카이로" 

카이로 시내를 걷고 있었다. 누군가 "웰컴 카이로(카이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외치며 다가왔다. 그는
대뜸 "너무 반갑다"며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싶다"고 호의를 베풀었다. 뜬금없는 제안에 경계심을 나타냈지만
그의 화려한 언사와 미소 띤 얼굴에 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게로 데려 가 차와 과자를 대접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환심을 샀다고 생각한 그는 갑자기
수제 향수와 파피루스를 내밀었다. 친구라고 생각하며 내놓은 상품이니 구입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가격"이라고. 웬만큼 강심장이 아니라면 차와 과자를 대접받은 까닭에 그
장사꾼의 손을 뿌리치며 가게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지인 중 한 명은 더 황당한 일을 당했다. 길에서 어떤 사람이 다가와 대뜸 "자기 딸이 약혼식을 한 날이라 너무
기분이 좋다"며 "손님을 대접하고 있으니 자기 가게에 들러 맛있는 차를 꼭 마셔달라"고 했단다. 물론 그 말은
거짓말이었고 그는 된통 바가지를 썼다. 


■대학 주변서 목격한 '부의 양극화' 

여행자를 괴롭히는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의 양극화도 쉽게 체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립대학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명품 구두를 신은 여대생을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 담벼락 너머에는 하루 1달러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도 많다. 오랜 독재의 단면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바가지 요금은 어쩌면 이러한 불합리에
대한 서민들의 저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동의하기가 쉽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불편함에도 카이로는 꼭 한번 가 볼 만한 도시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이집트국립박물관에는 세계사
교과서에서나 봤음 직한 유물이 한둘이 아니다. 카이로 구시가지의 풍경도 특별한 구경거리다. 이른바 콥트교회(단성론을 믿는 이집트의 기독교 종파)의 유적과 박물관, 수녀원, 유대교 예배당이 공존하고 있다. 이슬람의
심장부에 교회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640년 동안 이집트를 점령한 이슬람 장군인 아므르 이븐 알아스를 기념한 이슬람사원도 이곳에서 구경할 수 있다.


■잿빛 카이로의 밤은 불야성 

카이로는 밤의 도시다. 잿빛으로 가득 찬 카이로는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룬다. 나일강 주변의 고급 호텔과
유람선의 화려한 조명이 관광객의 혼을 다 빼버리는 것이다.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나일강 주변에서 즐기는
차 한잔의 여유도 낮의 여독을 씻어준다. 


카이로 남쪽에 위치한 마디 지역은 대표적인 신시가지다. 고급 쇼핑몰과 식당이 밀집한 곳으로 치안도 양호하다. 우리 교포들도 주로 이곳에 거주하며, 한국 식당도 몰려 있다. 참고로 카이로에는 한국 식당과 여행사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간장, 참기름, 떡국 등 한국 식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곳도 볼 수 있다.

카이로 시내 중심부의 타흐리르(자유) 광장.
카이로는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아랍세계의 정치적 격변 때문이다. 카이로 중심인
타흐리르 광장에는 매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오랜 독재를 종식시켰지만 아직 대안을 만들지 못한 대가다. 최근에는 이집트 지식인들의 탈출도 잇따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나일강 물을 한 번 마신 사람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속담을 이집트 친구에게서 자주 들었다. 이집트가
안정되고 나일강 물을 마음 편하게 다시 마실 날이 왔으면 좋겠다.


출처 : 부산일보 (2014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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