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윤용수의 아랍기행] 9. 튀니지 수도, 튀니스 2014-10-24
튀니지는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의 중간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지중해를 동과 서로 나눌 때 기준이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튀니지는 중세에 지중해를 가로지르던 무역선들이 물과 식량을 공급 받던 중간 기착지였고, 튀니지의 지중해 연안지역은 고대 이후 수많은 주변 군주들이 군침을 삼킬 정도의 옥토였다. 이런 이유로 튀니지는
페니키아인의 카르타고, 로마, 비잔틴, 아랍, 오스만 투르크와 프랑스로부터 오랜 지배를 당했다. 

 
튀니지는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다. 고대 세계 최강국인 로마제국을 공포에 떨게 한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그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아랍제국 최고의 사상가이자 역사가였던 이븐 칼둔도
튀니지 출신이며, 그의 동상은 지금도 수도 튀니스의 중심가에 우뚝 서 있다. 


■첫인사가 아랍어 대신 "봉주르"
 


하늘에서 본 튀니지는 3색이었다. 지중해 연안의 푸른 올리브 농장, 수도인 튀니스를 둘러싼 노란빛의 밀 생산지, 남부 사막의 황갈색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색채를 감상하며 튀니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작지만 친근했다. 택시 호객꾼도 다른 아랍 국가에서와 달리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거리로 나오자마자 혼란스러웠다. 도로표지판과 입간판이 거의 다 아랍어와 프랑스어 병용이었다.
도대체 아랍인가, 프랑스 속국인가? 그 와중에 다가온 현지인 가이드는 "봉주르"라고 프랑스 인사말을 건넸다. 기가 막혔다.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느낀 혼돈이 재현된 느낌도 들었다. 사실 튀니지는 아랍연맹
회원국인 동시에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이었다. 프랑코포니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국가, 혹은 지역을 뜻한다. 


그 가이드에게 아랍어로 말을 이었다. 그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사말 정도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유창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그는 "아랍어를 하는 서양사람은 보았지만 동양사람은 처음"이라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랍어를 하는 한국인"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이며 필자를 소개했다. 덕분에 그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첨탑이 사각형 구조인 자이납 사원.

■사각 모양의 자이납사원 첨탑 

튀니스도 다른 아랍 도시들처럼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졌다. 신시가지는 식민지 시대에 프랑스인이
거주하던 곳으로, 지금도 서구식 건물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그러나 튀니스의 민낯을 보려면 아무래도
구시가지로 가야 한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시가지는 다른 아랍 도시처럼 번잡스럽다. 특히 튀니스
특유의 직물공장과 상점을 많이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튀니지 건축물이었다. 선을 강조하는 다른 아랍지역과 달리 튀니지의
건축물은 유난히 각이 강조됐다. 구시가지의 대표적인 사원인 '자이납사원'의 첨탑도 사각형 구조였고, 시내에
즐비한 현대 건축물도 각이 잡힌 건물이 많았다. 그중에는 역삼각형 구조의 건물도 있었다. 가이드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어깨만 으쓱거렸다. 그 이유가 뭘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역삼각형의 현대 건축물이 눈길을 끄는 튀니스 시내.
튀니지의 대표적인 해변인 '시디 부 사이드'는 비취색으로 물든 지중해 바다와 그 색깔을 본뜬 건물의 대문, 창문 색깔이 조화를 이뤘다.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유유히 떠다니는 요트…. 이런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문득 이 나라가 생계 문제로 자기 몸을 분신하는 곳이 맞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서글펐다. 

아프리카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카이로완 사원.
■세계 4대 이슬람사원인 카이로완사원 

아라비아반도를 제외하면 이슬람 최대의 사원은 튀니지에 있다.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카이로완에 설립된 '카이로완 사원'이다. 7세기 이슬람군이 북아프리카를 정복한 뒤 세운 아프리카 최초의 이슬람사원이란다. 이곳은 메카의 하람 사원, 다마스커스 우마위야 사원, 예루살렘의 황금 사원과 함께 이슬람교의 4대 사원으로 불리고 있다. 

자동차를 빌려 한참을 달렸는데, 카이로완 사원 입구에서 출입을 거절 당했다.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슬림에게 사원이 갖는 의미를 잘 알기에 우격다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사원 주변을
맴돌고 있으니 동행한 가이드가 갑자기 필자의 손을 잡아끌며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원 관리인에게
소개했다. "이 사람은 아랍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이라고.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사원 관리인이 직접 사원의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설명해주었다. 아랍어가 도대체 무엇이라고? 알라에게 감사를 드렸다. 


카이로완 사원은 유럽과 이슬람의 건축 양식을 혼용한 듯했다. 사원 내부만 보면 얼핏 스페인 코르도바의
이슬람사원인 메스키타의 원형을 보는 듯했다. 이슬람사원은 예배를 드리는 종교적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병원의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심지어 마을회관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러한 종합 기능을 수행하는 사원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랍지역학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큰 행운이었다.



■토플리스 차림의 외국인도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임에도 서구화가 상당히 진행된 나라다. 그 서구화의 진행 속도를 해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튀니지 동북쪽 지중해에 접한 '수시'를 찾았다. 수영복은 물론이고, 심지어 비키니를 입은 여성도 해변에서 볼 수 있었다. 서양인처럼 보이는 여성은 아예 토플리스 차림이었다. 아무리 외국인이지만 아랍세계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슬람의 다양성인가, 아니면 세속화인가? 


40여 년에 걸친 프랑스 지배가 튀지니의 1천400여 년 이슬람 문화를 바꿔 놓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는 독립 이후 경제 부흥정책이 실패하면서 야기된 서구에 대한 환상도 겹친 듯했다. 우리나라도 경제 부흥을 이루지 못했다면 일제강점기에 대한 향수가 더 짙게 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랬다. 북아프리카인은 아프리카를 밟고 이슬람을 가슴에 안은 채 유럽을 쳐다보고 있다고. 그 표현이
튀니지에서 더욱 실감났다. 



출처 : 부산일보 (2014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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