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향

붉은 사막, 와디람에 들다 2015-04-06

▲ 베두인 천막에서 차를 끓이고 있는 무함마드
 
     
 



다시 아카바를 나선다. 어제 밤 어둠의 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우선 사막 산이 우람하게 다가온다. 우리처럼 늘 나무가 무성하거나 그 사이로 바위가 우뚝 솟은 산만을 보다가 아무 것도 없는 흙덩이 자체의 산을 보니 뭔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 속에 사막은 밤마다 바람에 의해 모래가 움직여 새롭게 이랑이 새겨진 언덕과 평원을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 그런 곳보다 모래가 아니면서도 풀과 나무가 자라지 않는 척박함으로 이뤄진 사막이 훨씬 많다는 걸 여행을
알게 된다.


아카바를 들어가고 나오는데는 검문을 받아야 한다. 주변의 상황이 어수선하다보니 한 사람 한 사람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국 사람이라면 속된 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요르단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요르단은 석유나 기타 지원이 부족한데 그런 면에서 비슷한 환경인 우리나라의 발전을
부러워하며 닮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디를 가든 대한민국인 “꼬레”에 호감을 갖고 대했다.


요르단에 돌아다니는 자동차 중에 한국 것이 제일 많다. 모두 중고를 수입해온 것들이다. 특히 요즘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아의 세피아라는 자동차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전자제품도 한국 것을 선호한다. 특히 스마트폰은 삼성을 으뜸으로 친다. 짧은 기간에 경제 부흥한 대한민국이 요르단의 모델인 것이다. 그러니 검문소마다 ‘꼬레’라고 하면 더 묻지도 않고 통과시켜준다.

이렇게 아카바만 구역을 빠져 나왔다. 이제 와디람(Wadi Ram) 사막으로 향한다. 아카바에서 북쪽으로 35Km를 달리는
길이다. 와디럼에 가까워지자 온통 세상이 붉다. 붉은 흙을 지리학적으로는 테라로사(Terra Rossa)라고 한다. 테라는
흙이라는 말이고 로사는 장미이다. 장미꽃처럼 붉은 흙을 말한다.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 황토가 바로 이 적토(赤土)인 것인데, 토양이 비옥하다고 한다. 아마 와디람 사막도 비가 자주 내린다면 비옥한 농토였을 것이란 생각을 해 봤다.
아랍어로 ‘와디’는 계곡이라는 뜻인데, 도로를 달리다보면 와디(Wadi)라는 표지판이 자주 보인다. 평소에는 문제없지만
비가 내리면 계곡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람’은 달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모아보면 와디람은 ‘달의 계곡’ 이 된다. 팍팍한 사막이 달의 계곡이라니……. 달 뜨는 밤을 사막에서 지새봐야 느낌을 앍 것 같다.

   
  ▲ 사막 한 가운데 딸하나무와 로렌스 스프링  
 



많은 여행자들은 와디럼 사막을 이야기할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다고 한다.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또 여행의 끝이
와디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만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사막 투어와 암벽 등반 등 모험과 스릴은 물론, 붉은 사막으로 해가 돋고 넘어가는 광경이며, 밤에 은하수가 쏟아질 듯 휘황한 별빛이 그렇다는 것이다. 와디럼은
약 3억 년 전 지각작용에 의해 생성됐다고 하는데 붉은 사암과 모래로 형성된 독특한 지형이다. 모레 언덕이 아닌 최고봉인 럼 마운틴은 해발 1,745m나 된다. 하긴 평지로 보이는 곳도 해발 1,000m가 넘으니 사막고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특성으로 1998년 요르단 정부는 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201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와디람 사막으로 들어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군데 군데 낙타 농장들이 보인다. 낙타는 과거 나바테아인들부터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온 베두인들의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또 낙타의 젖인 낙유는 그들의 중요한 식량이기도 했으니 낙타가
없이 이들은 메마른 사막의 역사를 건너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낙타를 운송 수단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낙타를 대신해 사막에서도 잘 달리는 사륜구동 자동차를 탄다. 낙타는 이제 관광용으로 사람들을 태우거나, 젖을 얻기 위해 기른다고 한다. 최근에는 싸움용으로 훈련시켜 투락(鬪駱)에 이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낙타의 용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고기용 낙타도 있다.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 아랍국가 순방시 낙타고기를 대접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막에서 생명처럼 아꼈던 낙타의 운명도 많이 바뀐 것이다.


드디어 와디람에 들었다. 온통 붉은 모래 위에 기이한 바위산이 우뚝 우뚝 솟아있다. 꼭 과학 잡지에서 본 혹성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들게 한다. 그만큼 색다르고, 눈이 부시다. 안내소에서 우리를 안내해줄 가이드를 만났다. 가이드 없이도 들어갈
수는 있지만 길을 못 찾고 헤매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가이드는 와디람 사막을 지켜온 베두인의 후예 무함마드라는 청년이다. 그가 지도를 보며 돌아볼 것을 정하더니 곧장 사륜구동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출발이다.


그가 차를 멈춘 곳에 샘이 있었다. 이른바 ‘로렌스 스프링’이다. 사막한 가운데 생명의 나무라는 딸하나무가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고, 산위 샘에서 호수를 통해 물이 내려왔다. 영국군 로렌스 중위가 발견했다 하여 로렌스 스프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와디람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이 샘물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등에 저장된 양분으로 사먹을 걷는 낙타일지라도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고 하는데 와디럼 사막에는 이런 샘들이 있어서 아시아 대륙에서 홍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중요한 이동로였다. 그러다보니 이곳 토박이들의 위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통행세를 내야했고, 그렇지 않으면 물건을 뺐거나 공격4을 했던 것이다.


요르단으로 출발하기 전 노인숙 선생님으로부터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를 꼭 보고 오라고 주문이 있었다. 이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랍에서 터키군을 축출하기 위해 아카바만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아랍연합군과 이를 이끄는 영국의 로렌스 중위의 활약상을 1962년 작품화 한 것이다. 사막을 이처럼 아름답고 진정성 있게 다룬 영화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사막을 동경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또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로렌스 중위와 아랍군의 노력으로 터키로부터
벗어났지만 그 중심국 요르단은 바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 전투가 벌어지는 시기에 발견된 샘인데 산 위에
있어서 보이지 않던 것을 호수를 연결해 끌어낸 것이다.

   
  ▲ 모래도 바위도 온통 붉은 와디람 사막  
 



다시 자동차가 사막을 가른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우박이 쏟아진다. 하루에 사계절이 있다는 사막의 날씨가
실감이 났다. 카잘릭 캐년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바위산 협곡으로 물이 졸졸 흐른다. 물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베두인들이 산다. 낙타를 키우며 견뎌온 삶이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먹고 산다.
바람이 차갑고, 우박이 내려서 베두인 천막으로 들었다.


천막 안은 의자와 침대 기능을 겸할 수 있도록 꾸몄다. 낮과 밤의 기능이 다른 것이다. 좌판에는 사막에서 주운 화석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는 화덕이다. 주변의 나무들을 주워 차를 끓여 판다. 얼마나 끓여냈는지 주전자의
재질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을렸다. 한기가 느껴져서 주인에게 차를 주문했다. 베두인 주인을 대신해 무함마드가 차를 끓인다. 추워서 불 옆으로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따뜻한 홍차를 마신다. /김판용 시인, 금구초중 교장



출처 : 새전북신문 (2015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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